예비군 같은 ‘예비재판관’ 등 ‘헌재 공백’ 보완책 수면 위로
제도적 유비무환 필요해
“한시적 임기 연장도 방법”
헌법재판소가 지난 14일 ‘재판관 7명 이상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고 규정한 헌재법 23조1항의 효력정지 신청을 인용하면서 헌재 공백 사태는 일단 막았지만 제도적 보완 필요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정치적 상황 등에 따라 헌재 재판관 선임이 지연돼 헌재 기능이 마비될 위기에 처하는 사례가 반복돼선 안 된다는 취지에서다.
헌재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측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재판관 공석으로 청구인이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돼선 안 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재판관 공석 문제가 반복하는데도 보완장치가 전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제도적 보완 필요성은 10여년 전부터 제기됐다. 김선화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의 2012년 ‘헌법재판관 공백 방지를 위한 법제도 개선방안’, 2017년 ‘헌법재판관 공백에 관한 해외 입법례와 입법 개선방안’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김 조사관은 보고서에서 재판관 9명이 공백 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예비재판관 제도’를 두거나 기존 재판관이 후임 재판관 임명 때까지 근무토록 하는 등 방안을 제시했다.
김 조사관은 다른 나라들이 헌재 기능 마비를 우려해 도입한 장치들도 소개했다. 독일이 대표적이다. 독일은 1951년 연립정부와 야당의 대립으로 재판관을 2년이나 선출하지 못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연방헌법재판소법에 ‘비상추천제도’를 신설했다. 후임 재판관 선출이 제때 이뤄지지 못하면 연방헌재가 재판관 후보 추천 절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헌법에 ‘예비재판관’ 제도를 마련해둔 나라도 있다. 오스트리아·튀르키예·볼리비아 등이다. 예비재판관은 재판관 공백뿐 아니라 재판관 기피 등이 발생했을 때도 투입된다. 오스트리아 헌재는 재판관 14명에 예비재판관 6명으로 구성됐다. 튀르키예 헌재는 재판관 11명, 예비재판관 4명이다. 볼리비아 헌재는 재판관과 예비재판관이 각각 5명이다. 다만 김 조사관은 “헌법재판관에 의해 재판을 받도록 전제된 현행 체제에서 예비재판관을 두는 데 대해 헌법적 근거 등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며 “예비재판관 설치는 헌법 개정 시 상세히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후임 재판관이 임명될 때까지 전임 재판관이 업무를 계속 수행하는 사례는 독일과 스페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두 나라는 헌법으로 재판관 임기를 정하면서도 재판관 직무수행은 후임 재판관이 임명돼 직무를 시작할 때까지 계속된다고 규정했다. 김 조사관은 보고서에서 “재판관 공백을 방지해야 하는 이유는 헌법 해석에서의 다양성 보장 등을 위해서”라고 지적했다.
국내에선 임기 규정 예외 사유를 신설해 후임 재판관이 임명될 때까지 기존 재판관 임기를 연장하는 헌재법 개정안이 국회에 여러 차례 발의됐다. 그러나 헌법상 임기 규정에 어긋난다는 의견에 부딪혀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5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헌재 기능 유지를 위해 후임 재판관이 임명되지 않았을 때 한시적으로 재판관 임기를 연장하는 방안을 법률로 합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을 개정해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방식의 제도를 도입하는 게 근본적인 보완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선희·김나연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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