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타고 활짝 열린 한국문학 해외 진출의 문[기고]
K문학 성공적 진격 요인은
작가·번역가·에이전트 협력
‘논픽션 역자’ 발굴도 관심을
문이 활짝 열렸다. 문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쉬워졌다. 누구라도 들어갈 수 있으니 세상이 많이 변한 게 분명하다. 그런데 열린 문으로 들어간다고 안에서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가 들어가느냐, 무엇을 들고 들어가느냐, 무슨 전략과 아이디어를 들고 들어가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누가 무엇을 들고 어느 문으로 들어가느냐도 중요하다. 같은 것을 들고 들어가더라도 각 문안의 환경과 그 안에 있는 이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들어가는 사람, 들어가야 할 것, 그리고 어느 시기에 들어가야 하는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 한국문학이 진출할 해외 출판시장의 관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세계 출판시장에는 들어가고자 하는 각기 다른 수많은 언어권이 존재한다. 영미권만이 우리가 들어갈 관문인 건 아니다. 중국과 대만 등의 중화권, 일본어권, 태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권, 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을 중심으로 한 아랍어권, 중앙아시아권, 동유럽권, 서유럽권, 북유럽권, 북미와 중남미, 그리고 아프리카 등 다양하다. 한국문학을 비롯해 한국 출판저작물을 지난 25년간 수출해온 필자가 거래한 나라 수만도 40곳이 훌쩍 넘는다. 같은 언어권이라 할지라도 한 작가의 동일한 책이 각 나라의 출판시장에서 나타나는 반응이 다르니 한 작가라도 그의 각기 다른 책이 나라마다 다른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은 지극한 일상이다.
문학의 경우 작가마다 혹은 그의 작품에 따라 각 언어권에서 도출되는 결과가 저마다 다르니 특정한 나라나 언어권으로 진출하고자 할 때에는 현지 출판시장의 수요와 거기서 나타나는 특징을 사전 분석하고 시도하는 것이 이제는 상식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살 사람 생각은 하지 않고 팔 사람이 팔고 싶은 것을 팔려고 애를 썼다. 파는 사람이 아무리 좋다고 말해도 그 시장에서 유통·소비 가치가 없다면 의미 없는 일이다.
1995년에 출판저작권 에이전트를 시작했고 한국 출판저작물 수출을 2000년 이전 영미·유럽으로 시도한 적이 있다. 물론 당시 손에 꼽을 정도이긴 하지만 일본으로 어학 관련서와 현지에서 잘 알려진 한국 인사의 자서전 등을 수출한 바는 있다. 그리고 같은 언어권으로 한두 작가의 문학작품을 진출시킨 예는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속적으로 해당 언어권으로 진출시킨 것도 아니고, 특히 영미·유럽으로의 수출은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몇몇 도서를 소개했지만 그때마다 해외에서는 ‘관심 없다’ ‘안 산다’ ‘이미 비슷한 책을 낸 바 있다’는 등의 답변으로 거절 의사를 밝혔다. 이런 답변의 배경엔 여러 사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한국·한국출판·한국문학에 대한 인지도와 경쟁력이 현지 출판시장에서 없다는 것 아니었을까. 리스크를 일부러 감수하고 시도를 감행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들어갈 관문을 노크할 수는 있었으나 누가 무엇을 들고 어떻게 들어가 딜을 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과 노하우가 거의 갖춰지지 않았고 정책적 전략도 부재한 수준이었다. 시장에 기반한 출판산업 차원에서의 진출 및 그에 따른 지원책보다는 해외에서 번역·출판되는 것에 의미를 두던 시절이라 번역과 출판 비용을 거의 전액 지원하다 보니 유력한 출판사 확보보다는 영세한 소규모 출판사를 통한 번역·출판이 상당수를 차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여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국출판은 빠르게 성장했고, 해외 출판시장 진출을 위한 충분한 노하우와 전략을 확보해가는 가운데 신경숙, 공지영, 황선미, 편혜영, 손원평, 김애란, 박상영, 천명관, 정보라, 황보름, 김호연 등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세계 문단에서는 물론이고 출판시장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런 환경 기반에서 한강은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에 이어 202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사이 유능한 번역가군이 형성되었고 그들의 노력과 협력이 조화를 이루며 다양한 개성을 지닌 한국 문학작품들이 수많은 언어로 각 영역에서 번역·출간될 수 있었다. 작가, 번역가, 그리고 문학작품을 해외로 수출하는 에이전트가 상호 긴밀히 협력한 것도 성공 요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또 한국문학번역원의 번역자 양성 및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판권 수출을 위한 인력 양성 프로그램 진행도 유효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향후에는 소설뿐만 아니라 논픽션 영역의 양서를 꾸준히 발굴하고 이에 대한 번역 작업을 지속시킬 수 있는 유능한 역자 발굴·양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나도 부정선거라 생각했었다”···현장 보고 신뢰 회복한 사람들
- 국힘 박상수 “나경원 뭐가 무서웠나···시위대 예의 있고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 늙으면 왜, ‘참견쟁이’가 될까
-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이사장 해임 “모두 이유 없다”…권태선·남영진 해임무효 판결문 살펴
- 내란의 밤, 숨겨진 진실의 퍼즐 맞춰라
- ‘우리 동네 광장’을 지킨 딸들
- 대통령이 사과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사과해요, 나한테
-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에 차량 돌진…70명 사상
- [설명할경향]검찰이 경찰을 압수수색?···국조본·특수단·공조본·특수본이 다 뭔데?
- 경찰, 경기 안산 점집서 ‘비상계엄 모의’ 혐의 노상원 수첩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