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전단, 북한 주민 인권 위해 뿌린다는데…우리도 인권이 있습니다”[논설위원의 단도직입]
경기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에 있는 ‘통일촌’은 1972년 비무장지대(DMZ)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안에 평화통일을 위한 완충지대로 조성된 마을이다. 1973년 부모님과 함께 이 마을에 입주한 이완배 이장이 이곳을 지켜온 지도 어언 반세기가 흘렀다. 통일촌 이장을 맡은 기간만 30년이다. 남북관계가 악화될 때는 대피소 피난 생활을 하고, 좋을 때는 경의선 타고 개성 구경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의 지난 삶 자체가 곧 분단의 역사이다.
한글날인 지난 9일 경기 파주 임진각은 화창한 휴일을 맞아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북한의 오물풍선 부양이 5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일반 시민들의 일상은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안에 사는 주민들 상황은 다르다. 날로 악화되는 남북관계로 인한 고통은 그들만의 몫으로 떠넘겨졌다.
‘통일촌’은 민통선 안에 있는 마을이다.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북 양쪽에 각각 2㎞의 비무장지대(DMZ)가 설정돼 있고, DMZ 남방한계선에서 다시 5~20㎞는 민통선 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통일촌은 통일대교의 검문소를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다. 1973년 통일촌에 정착한 이래 벌써 반세기 넘게 이 마을을 지켜온 이완배 이장(70)은 마치 낯익은 동네 청년 대하듯 익숙한 몸짓으로 검문소 군경에게 민통선 출입증을 건넸다.
통일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것은 집집마다 나부끼고 있는 태극기였다. 혹시 국경일이라 다들 태극기를 단 것이냐고 물으니, 이 이장은 “여기는 안보의식이 투철한 사람들만 살 수 있는 마을”이라면서 “이 동네는 365일 태극기를 게양한다”고 말했다.
그와 장단면사무소 앞 벤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북한 땅이 지척인 이곳에선 망원경으로 보면 저 멀리 펄럭이는 인공기를 뚜렷하게 볼 수 있다. 그는 북에서 끝없이 날아오는 오물풍선과 귀를 찢는 대남방송 때문에 주민들 모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남북관계는 지금이 가장 악화된 것 같다”고 우려했다. 도끼만행 사건부터 연평도 포격까지, 지난 반세기 동안 수많은 일촉즉발 상황을 최전방에서 겪어온 그가 지금이 최악인 것 같다고 말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 오물풍선 자체가 두렵다기보다는, 과거와 달리 위기가 전혀 관리되지 않고 있는 지금 상황이 그만큼 우려된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그의 우려대로 상황은 점점 더 통제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 인터뷰를 하고 난 지 불과 사흘 후 북한이 국경선 부근 포병연합부대 등에 사격준비태세를 갖추라는 작전예비지시를 내렸다. 북한은 남한이 보낸 무인기가 평양 상공을 침범한 데 따른 대응이라 밝혔다. 명분을 쌓기 위한 북한의 자작극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전문가들은 남측에서 보낸 무인기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남북 대치 상태가 단순한 심리전을 넘어 새 국면으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그는 북한에 괜한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먼저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북전단 살포가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위해서라는데, 여기 사는 민통선 주민들에게도 인권이 있다”고 토로했다.
끝없이 날아오는 오물 풍선과 귀를 찢는 대남방송에 노이로제
도끼만행 때 보따리 싸고 피난생활도 했지만, 남북관계 지금
이 최악이런 상황에 누가 관광 오고 특산품 사갈까…주민들 속 까맣게 타
탈북민단체, 계속 대북전단 살포해 북한에 빌미 주면 악순환 안 끝나
정부는 막을 생각도 없고 사실상 승인…몸으로라도 막아낼 것
-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가 지난 5월28일 이후 벌써 26차례에 달합니다. 민통선 주민들의 불안감이 클 것 같습니다.
“말도 못합니다. (휴대폰으로 찍어놓은 사진을 보여주며) 여기 길이고, 논이고, 오물풍선 떨어진 거 보세요. 북한에서 생수병, 소주병 등 온갖 쓰레기를 넣어 보내요. 그뿐입니까. 지금은 낮이라 잠시 안 나오는데 새벽부터 아침까지, 저녁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틀어대는 대남방송 때문에 주민들 모두 노이로제 상태예요. 귀가 따갑다 못해 뜨거울 지경입니다. 옛날 대남방송은 그나마 노래나 말소리였는데 지금은 귀신 소리 같기도 하고 여우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뭐 말로 설명하기 힘든, 사람 정신 긁는 이상한 소리가 계속 나와요. 그러면 남쪽에서도 거기에 대응하겠다고 시끄러운 노래 같은 대북방송을 크게 틀죠. 그나마 우리 마을 쪽에선 대북방송 소리는 작게 들리는데, 대북방송과 대남방송이 동시에 크게 들리는 대성동마을 주민들은 더 미칠 지경일 거예요. 이사 가겠다고 난리입니다.”
-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외신 인터뷰에서 북한의 오물풍선을 놓고 ‘국민 안전에 위해가 발생할 경우 북한은 감내하기 어려운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상황에 따라 군사적 조치도 고려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됐는데요.
“아니, 자꾸 그렇게 하면 민통선 주민들만 피해를 봅니다. 제가 보기에는 대북전단 보내는 탈북민단체들이 먼저 북한에 빌미를 주고 있어요. 대북전단 살포하면 북한이 그에 대한 보복으로 오물풍선을 보내고, 그러면 다시 남한도 질세라 대북방송을 하면서 발언 수위를 높이잖아요. 애들 싸움도 아니고, 이러면 악순환이 끝나지 않아요. 이 마을 주민들은 남북관계가 불안해지면 논밭 출입을 통제당하고, 더 심해지면 대피소 생활을 해야 합니다. 대북전단 날리는 단체들은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위해서라는데, 이곳에 사는 민통선 주민들도 인권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 여기 살아봐야 현실을 알지. 왜 자꾸 대북전단을 살포해서 북한에 먼저 빌미를 줍니까.”
- 정부에 대북전단 살포를 막아달라고 건의는 해보셨습니까.
“소용없어요. 귀도 안 기울여요. 사실상 정부가 승인해준 거 아닙니까. 탈북민단체들이 몰래 숨어서 뿌리더니 이제는 아예 임진각에 한 달 동안 정식으로 집회 신고를 해놨답니다. 공개적으로 살포하겠다는 거죠. 예전에는 경찰이 못 날리게 막아주고 그랬는데, 지금 정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니 어쩝니까. 우리가 직접 실력행사에 나설 수밖에요. 여기 주민들이 시위를 준비하고 있어요. 몸으로라도 막을 겁니다. 이렇게는 못 삽니다.”
- 정부가 주민들 의견을 청취하거나, 오물풍선·대남방송 등에 대한 대응책을 설명하기 위해 간담회 같은 걸 연 적은 있나요.
“없어요. 파주 쪽 민통선 안에는 해마루, 대성동마을, 통일촌, 세 개 마을이 있습니다. 이 세 마을 이장들은 서로 수시로 만나서 대책을 논의하곤 하는데, 정부가 우리에게 뭔가를 설명하거나 의견을 물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 접경 지역에서 50년 넘게 살아오셨으니,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이런저런 상황을 다 겪어보셨겠네요.
“항시 불안감을 느끼며 살았죠. 1976년 8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북한군들이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죽인 도끼만행 사건 때는 주민들이 ‘자유의 다리’ 건너 남쪽으로 피난 가려고 보따리까지 쌌어요. 결국 떠나지 못하고 마을 대피소에서 피난 생활을 해야 했지만요. 2015년 8월 국군 2명이 DMZ에서 북한군의 목함지뢰를 밟아 중상 입은 사건이 났을 때도 주민들 모두 사흘간 대피소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북관계가 가장 악화된 것 같아요.”
민통선 마을에는 만에 하나 돌발 상황 발생 시 언제든 즉각 대피소로 집결할 수 있는 대응 체계가 항시 구축돼 있다. 이 이장은 “혹시 내가 마을에 없는 경우에라도 외부에서 휴대폰으로 바로 방송을 하면, 통일촌 주민 집집마다 실내로 방송이 다 나가게끔 돼 있다”면서 “방송을 듣자마자 주민들 모두 이장 지시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대피소로 모이는 훈련이 잘돼 있다”고 말했다.
- 통일촌 이장을 맡은 지 벌써 30년째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마을엔 언제, 어떻게 정착하시게 된 건가요.
“원래 부모님 때부터 이곳이 고향이었어요. 분단되면서 실향민이 됐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의 민통선 북방지역 개발정책에 따라 이곳에 마을이 조성된다기에, 1973년 아버지·형과 함께 들어와 살게 됐죠. 그때 제 나이가 스무 살 무렵이었어요. 안보정신이 투철하고 전과가 없는 사람들로 엄선해서 제대 장병 40가구, 실향민·원주민 40가구로 정착촌이 꾸려졌습니다. 특히 월남전 참전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겐 입주 우선권이 주어졌어요.”
- 이스라엘 키부츠를 모델로 삼아 조성된 마을이라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주민들이 낮에는 농사짓고, 밤이면 돌아가며 무기고를 지켰어요. 비상 사이렌이 울리면 즉시 무기고로 달려가 각자 총 한 자루씩 받아서 초소에서 보초를 섰죠. 여성들도 1년에 두 번씩 사격 훈련을 받았습니다. 비록 군인은 아니었지만, 우리도 국가를 지키는 사람이란 마음이었어요. 북한도 민간인이 사는 이 마을이 있는 한 함부로 휴전선 너머를 공격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었죠. 처음에는 이장을 군인 출신만 시켰는데, 주민들이 그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항의해서 일반 민간인 출신도 이장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이장을 맡게 됐는데, 어느덧 벌써 30년이 흘러버렸습니다.”
- 초창기 정착민분들은 얼마나 살아 계십니까.
“여기가 공기 좋고 물 좋아서 다들 장수하는 편인데도, 이제는 한 30% 정도 남아 계시려나요. 많이들 돌아가셨죠. 이 마을 입주를 자원한 실향민분들은 통일이 되면 누구보다 먼저 고향으로 달려가겠다는 그 마음 하나로 사셨어요. 실제 통일이 가까워진 것처럼 느껴진 날들도 있었죠. 2007년 경의선 남북 철도가 56년 만에 처음 연결됐을 때 저도 통일촌 이장 자격으로 초청받아서 열차 타고 개성 구경을 다녀왔습니다. 1998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떼 몰고 통일대교 건너 방북할 때는 마을 주민 전체가 몰려 나가서 환송했던 기억도 선연합니다. 하지만 많은 실향민분들이 끝내 고향 땅을 못 밟고 하나둘 눈을 감고 계시네요.”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는 그의 표정은 착잡해 보였다. 인터뷰한 날 북한은 그가 개성까지 타고 갔던 경의선 열차의 북한 쪽 철길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남쪽 국경을 원천적으로 차단·봉쇄하는 요새화 공사를 진행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15일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군사분계선(MDL) 이북 일부 구간을 폭파했다.
- 그래도 주민분들이 열심히 지키고 가꿔오신 덕에 마을 모습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특히 통일촌 장단콩은 유명한 특산품이 됐습니다.
“원래 이 지역에서 나는 쌀, 콩, 인삼은 조선시대부터 임금님께 진상하던 특산품이었어요. 그 명성을 되살리기 위해 본격적으로 다시 콩을 재배하기 시작했죠. ‘장단콩’이란 이름도 제가 직접 붙인 거예요. 처음에는 판로가 없어서 사가는 사람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 웰빙 바람이 불면서 이제는 장단콩 아이스크림, 장단콩 팥소빵 등을 많이 사갑니다. 매년 임진각에서 ‘파주 장단콩 축제’도 열려요. 처음에는 콩을 갖고 무슨 축제냐 했는데, 이제는 50만~70만명이 찾는 큰 축제가 됐습니다.”
- 남북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민통선 주민분들은 경제적 타격도 크겠습니다.
“그렇죠. 자꾸 재난문자 날아오면 누가 도라전망대나 임진각 땅굴 보러 오겠어요. 무서워서 안 오지. 이곳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멀리까지 온 김에 기념이 될 만한 걸 뭐라도 사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누가 관광을 오겠으며, 누가 특산품을 사가겠습니까. 오물풍선 때문에 지난 7월 도라전망대가 20일 동안 폐쇄됐다가 겨우 다시 열렸어요. 그때도 민통선 주민들 속은 까맣게 탔습니다.”
파주시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관내 DMZ를 방문한 관광객 수는 2022년 12만5597명, 2023년 37만7367명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대부분 제3땅굴~도라전망대~통일촌 코스로 운영되는 DMZ 평화관광 참여자들이다. 하지만 북한의 오물풍선 부양 때문에 DMZ 평화관광은 지난 7월22일 임시 중단됐고, 겨우 재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북한의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폭파 여파로 15일 또다시 중단됐다. 군은 이날 민통선 마을 주민들에게 이동 자제 권고 등 비상조치를 내렸다.
- 통일을 원하지 않는 젊은 세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최근 남북관계를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면서 통일 포기를 시사했고요. 평화통일을 위한 완충지대로 조성된 통일촌 주민으로서 이를 지켜보는 심정이 복잡하실 것 같습니다.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뿌리내린 지 어느덧 반세기가 지났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통일에 관심이 없대도, 저는 여전히 남과 북이 하나 될 그날을 기다립니다. 지금은 주민들 모두 나이 들어버렸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여기가 공기 좋고 물도 좋아서 입주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문의가 많아요.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돼서 이 마을이 계속 유지되려면 일단 이런 대치 상태를 해소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유진 논설위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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