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명 칼럼] 비록 삼성에 모질게 굴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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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알량한 자산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ETF(상장지수펀드)는 삼성전자 주식을 꽤 담고 있다.
이 정부 들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대통령 해외순방에 거의 빠짐없이 동행하고 있다.
삼성전자 3분기 실적 발표가 나오기 하루 이틀 전 삼성그룹 출신 전직 임직원 4명에게 삼성 위기론에 대해 물어보았다.
삼성전자는 사내 유보금이 138조원인데 쌓아만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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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트라우마'를 본다
정치·검찰은 가혹했지만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밖에
내 알량한 자산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ETF(상장지수펀드)는 삼성전자 주식을 꽤 담고 있다. '5만, 6만전자'를 바라보는 심기는 그래서 '사적으로도' 불편하다. 전교 1등만 하던 아들이 성적 미끄럼을 탈 때 부모가 느낄 그런 울화통이다. 금쪽같은 내 주식…. 삼성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가.
이 정부 들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대통령 해외순방에 거의 빠짐없이 동행하고 있다. 대통령 옆에 선 이 회장 사진을 볼 때마다 학폭 피해를 당하고도 웃는 아들을 보는 것 같다. 그는 국정농단 사건 이후 8년간 사법 리스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뇌물공여 혐의로는 이미 형을 살았고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 합병 혐의로 2심 재판을 받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18년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이 수사를 결재했다. 올 2월 1심에서 완전 무죄가 났을 때 검찰은 '스톱'할 수도 있었는데 '고'했다. 검찰 항소를 윤 대통령은 미리 보고 받았을까. 그 후로도 여러 번 함께 해외순방길에 올랐다. 이 회장과 있을 때 윤 대통령은 늘 환하게 웃고 있다. 부산 재래시장에서 어묵을 먹을 때 특히 환해 보였다.
삼성전자 3분기 실적 발표가 나오기 하루 이틀 전 삼성그룹 출신 전직 임직원 4명에게 삼성 위기론에 대해 물어보았다. "당신 같으면 감옥 두 번 가고 싶겠나. 감옥 안 가는 게 목표인 조직에선 다른 건 다 뒷전이 된다." 지난 10년간 삼성이 벌인 가장 큰 사업적 결단은 2014년 삼성테크윈과 삼성토탈을 한화에 넘긴 것이다. 그때 호적이 바뀐 동료들을 보며 삼성맨들의 로열티에 금이 갔다고 진단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물론 매각도 경영이다. 그런데 뭘 화끈하게 지른 적은 없다. 구글, 아마존 같은 빅테크들이 성장하는 방식은 '제일 잘하는 놈'을 사들이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사내 유보금이 138조원인데 쌓아만 둔다. 나는 이것이 일종의 '학폭 트라우마'가 아닐까 한다. 당한 경험이 불러오는 심리와 행동의 위축 말이다
9-9-6-8-8-3-7-8. 이것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삼성라이온즈 야구단의 시즌 순위다. 만약 올해 코리안시리즈에 진출하면 9년 만의 진출이 된다. 롯데자이언츠 팬들은 '그게 뭐' 하겠지만 1982년 이래 삼성라이온즈 팬인 내게 이것은 '삼성이라 말할 수도 없는' 성적이다. 관심은 없지만 다른 종목의 삼성 구단 성적도 신통치 않은 것으로 안다. 그 이유가 실용경영, 그러니까 구단 투자를 줄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익숙한 삼성은 '야구도 잘하는 삼성'이었는데 '야구만 못하는 삼성'을 거쳐 자칫하다가는 '야구도 못하는 삼성' 소리를 듣게 생겼다. 내실도 좋지만 브랜드 가치는 생각해야 한다. '일등 삼성' 브랜드가 반도체만 팔아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병철 회장 이래로 삼성에는 '맹장' CEO들이 많았다. 요즘은 주요 계열사 CEO들 중에 이름이 기억나는 사람이 별로 없다. CEO는 판단 하나로 기업의 10년 매출을 결정하는 자리다. 글로벌 기업들이 말도 안 되는 돈을 주고 스타 CEO를 영입하는 것은 실은 말이 되는 짓이다. 삼성은 지난해부터 CEO 출신들의 상근고문 예우 축소·폐지에 들어갔다. 삼성을 나와 경쟁사로 취업하는 임원은 부지기수다. 일등은 잔인하게 일 시키고 어마어마하게 보상해 자부심을 자극한다. 대충 일 시키고 찔끔 주면 이류다.
최근 8년 삼성의 소극 경영이 모두 사법 리스크 때문일 리는 없다. 또 비록 정치와 검찰이 삼성에 모질게 굴었어도 삼성이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학폭 피해자들도 그렇게 극복한다. 그 첫걸음으로 올해 코리안시리즈는 삼성라이온즈가 우승했으면 좋겠다. 올드팬의 개인 소망이다. LG, 기아 팬들은 이해해 달라.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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