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평화상에서 빠진 ‘조선인 피폭자’…“미·일 사과해야”
히로시마현 조선인피폭자협의회장 심경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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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미국 모두 조선인 피해자에게 단 한번도 사과하지 않았다.”
15일 한겨레와 전화 통화를 한 김진호(78) 히로시마현 조선인피폭자협의회 회장은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 단체로 ‘일본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니혼히단쿄·피단협)가 선정된 것과 관련해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원자폭탄을 터트린 미국만 잘못한 게 아니라 식민지 조선에서 무수한 조선인들을 데려가 결국 원폭 피해를 당하게 한 일본 정부도 책임이 크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11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피단협을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 단체로 선정하며, 지난 70여년간 반핵 활동을 해온 이 단체에 대해 “육체적 고통과 아픈 기억을 평화를 위한 희망과 참여에 쓰기로 한 생존자를 기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생존자”로 조선인 피폭자들은 언급되지 않았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축하 메시지에도 전쟁 당사자였던 일본을 빼고 최대 피폭자인 조선인들은 언급되지 않았다.
2010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펴낸 자료에 따르면, 원폭에 피폭된 조선인 수는 히로시마에서 5만명, 나가사키에서 2만명으로 추정된다. 사망자는 약 4만명으로 추정되지만 자료 소실로 정확한 피해 규모는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6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피폭지인 히로시마를 방문해 피단협 관계자들을 만났지만 한반도 출신 피폭자는 참석하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원폭 사몰자(사망자) 위령비’에 헌화했지만, 같은 방향에 자리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들르진 않았다.
한국인 피폭자가 일본 피폭자처럼 의료·생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피폭자들과 일본 시민단체들이 수십년간의 지난한 투쟁 끝에 이뤄낸 성과였다. 일본 정부는 1957년 ‘원자폭탄 피폭자의 의료 등에 관한 법률’ 그리고 1968년 ‘원자폭탄 피폭자에 대한 특별조치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의료비 및 생활보호금을 피폭자에게 지급했으나, 대상을 일본 국내 거주자로 한정해 한국인을 사실상 배제했다. 일본이 두 법률을 통합한 ‘원폭 피폭자에 대한 원호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일본 밖 거주 원폭 피폭자가 일본 재외공관을 통해 원호수당을 신청할 수 있게 된 것은 2008년에 이르러서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일본과 국교가 없는 북한 피폭자들은 원호수당 등의 지급 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김 회장은 “북한에서도 2008년 조사를 마쳐 피해자 1900여명, 생존자 380여명을 확인했다”며 “이들에 대한 치료와 보상은 국적의 문제가 아니라 인도적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조선인 피폭자가 많았던 이유는 많은 조선인이 군수 공장이 많았던 두 도시에 강제동원되거나 징집되어 와 있었기 때문이다. 2중·3중의 피해를 입었던 한국인 피폭자들이 일본 법정에서 이에 대한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으나,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등을 들며 일본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특히 ‘피폭 1세대’ 생존자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5년 생존 피폭자 규모를 7500여명으로 추산했는데, 대한적십자 통계로는 지난해 1834명밖에 남지 않았다. 피폭자들은 가해국의 사과·보상과 함께 ‘핵 없는 미래’를 요구하고 있다.
김 회장은 “일본 정부가 희생자 유족에 뒤늦게라도 피해를 보상하고, 미국 역시 가해국으로서 필요한 조처를 해야 한다”며 “특히 일본은 핵무기금지조약(TPNW)에 가입해 원폭 피해국이자 전쟁 가해국으로서 ‘핵 없는 세계’에 앞장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편, 한국 원폭 피폭 2세 환우 쉼터인 ‘합천평화의집’ 등 합천 지역 한국 원폭 피해자 단체들은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일본 피단협이 선정된 데 대해 15일 축하 성명을 냈다. 이들은 “현재 한국에서는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 힘들게 살아가는 원폭 피해자 2·3세들의 절절한 삶이 계속되고 있다”며 “일본은 물론 세계에 있는 피폭자와시민사회의 소통·연대가 긴밀해지기를 희망한다”고 호소했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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