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국민 아니냐, 다 감수하고 살았는데”···울분 쏟아내는 접경지 주민들
“전방 사람들은 국민이 아닙니까? 다 감수하고 살아왔는데….”
강원 철원군에서 벼농사를 짓는 김용빈 철원농민회장은 최근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안에 있는 논에 일하러 나갈 때마다 대북·대남방송 소음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김씨는 15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민통선 안에서 진행되던 평화 견학이 다 중단되고 가을부터 시작된 대북방송 소리만 계속 들린다”며 “북에서 내려온 오물풍선이 마을이고 전방이고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를 비롯한 접경지역 주민들은 남북 군사적 긴장이 나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일상생활이 불가하다”며 울분을 토했다. 대북전단과 오물풍선이 오가던 남북의 심리전이 ‘무인기 사태’와 남북 연결도로 폭파 등으로 이어지는 동안 주민들의 불안은 연일 커졌다.
경기 파주시 민통선 안쪽에서 사과농장을 운영하는 전환식씨는 이날 오후 농장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군 통제에 막혔다. 전씨는 “가뜩이나 불안한 상황인데 오늘 민통선 안에서 일하던 농민들을 군인들이 쫓아냈다”며 “한창 바쁜 수확철인데 일을 못 하고 집에 돌아와야만 했다”고 말했다.
전씨는 “박근혜 정부 때 연천에서 폭격이 있어 출입이 막혔던 때 이후로 이렇게 쫓겨났던 적이 없었다”며 “9·19 합의 이후 포탄 터지는 소리도 조용했는데 대북전단 살포 이후 탱크 소리와 사이렌 소리가 온종일 들려서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민통선 내 농민들뿐 아니라 안보 관광객을 상대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들도 “걱정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파주시 탄현면에 사는 안재영씨는 “민통선 안쪽 도라전망대에 들어가는 것이 전면 금지된 상황이라 식당이나 상인들의 생계가 걱정된다”며 “자야할 시간에도 대북방송이나 북한이 트는 굉음이 계속 들려서 화가 난다. 파주에서 산 지 17년이 됐는데 이런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금도 이미 일촉즉발 분위기에 와 있는데 전방지역 마을에선 크든 작든 불상사가 생기면 악영향이 크다”며 “관광객을 유치해서 지역 경제를 어떻게든 해보려고 바둥거려도 한 방이면 쓰러진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방치하고 북한을 자극하는 등 오히려 긴장을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씨는 “북한의 도발 수위가 높아지는 게 아니라 남한의 평화관리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라며 “접경지역에서 대북전단 보내지 말라고 계속 촉구하는데도 금지조치를 하지 않는 것은 (정부가) 평화관리를 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생명에 위협을 주면서까지 표현의 자유라는 말을 허용하면 안 된다”며 “북한에만 뭐라고 할 것이 아니라 남한이 주도적으로 평화관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전씨는 “자국민이 이렇게 불안에 떨고 있는데 무슨 전단을 뿌리고 대북방송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전쟁을 부추기는 모습이 전쟁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 같다. 국민의 안전보다 (대북전단의) 표현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짓은 짐승도 그렇게는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이날 기자회견을 연 접경지역 주민들과 자주통일평화연대 등 시민단체도 “북한 탓만 되풀이하는 정부 태도가 위기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며 “대북전단 살포 등 군사적 적대 행위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외쳤다.
강화도에 사는 함경숙씨는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사이렌 소리 때문에 주민들은 하루하루가 불안하지만 아무런 대책도 없는 상태”라며 “강화도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최근처럼 불안했던 적은 없었다”고 했다. 연천에 사는 서희정씨는 “우리가 자갈을 던지면 북한에서는 돌멩이가 날아오는 상황”이라며 “부디 윤석열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1순위에 두고 대북전단·오물풍선 사태에 전향적으로 나서달라”고 말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성명서에서 “통일부는 대북전단 살포 자제를 요청하거나 제재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또다시 강조하며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위법 행위를 방치해 위기를 격화하고, 국민도 국회도 동의하지 않은 강경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국가안보실장·통일부 장관·국방부 장관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이예슬 기자 brightpear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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