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140〉대통령 직속 과학기술자문회의 설치…위원장에 조완규 서울대 총장

2024. 10. 1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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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대통령이 1989년 6월 5일 조완규 서울대 총장 등 과학기술자문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주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새로운 출발이었다.

“과학기술자문회의는 과학기술계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인사들을 폭넓게 참여시켜서 미래를 향한 과학기술 비전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1989년 1월 25일 노태우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과학기술처 새해 업무 보고를 받고 이같이 지시했다.

이상희 과학기술처 장관은 이에 앞서 “대통령 자문기구로 과학기술자문회의를 한시적으로 설치해서 범국가적인 연구개발 체제를 정립하고 미래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해 우주, 항공, 해양, 첨단 기술개발 등에 산·학·연이 공동으로 참여토록 하겠다”고 보고했다.

이상희 전 장관의 생전 증언.

“자문회의는 각 부처로 흩어진 과학기술 정책을 종합적으로 조정해서 일관성 있게 과학기술 혁신 정책을 추진, 국가 연구개발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설치한 것입니다.”

과학기술지문회의 설치는 헌법 127조에 근거했다. 127조는 다음과 같이 모두 3개 항이다.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해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해야 한다. △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한다. △대통령은 제1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자문기구를 둘 수 있다.

과학기술처 고위 관계자의 말.

“과학기술처가 법 제정 절차를 거쳐 자문회의를 설치할 경우 시일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우선 한시적으로 자문회의를 설치해 운영하면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법을 제정, 헌법기구로 상설화한다는 방침을 정했습니다. 자문회의는 헌법기구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로 가는 징검다리였습니다.”

설치 작업은 순탄했다.

이상희 장관은 1989년 3월 경제장관회의 안건으로 12조 부칙인 과학기술자문회의 규정안(의안번호 23호)을 제출했다.

과학기술처는 규정안 제출에 앞서 경제기획원, 문교부, 상공부, 체신부, 총무처 등과 사전 협의를 끝냈다.

과학기술처는 자문회의 설치 이유로 “고도산업 복지사회를 조속히 건설하고 그 핵심인 과학기술 기본정책 방향과 관련 제도 발전 등에 관한 대통령 자문에 응하기 위해 대통령 소속으로 과학기술자문회의를 설치한다”고 밝혔다.

자문회의는 △과학기술 기본정책 방향에 관한 사항 △과학기술을 촉진하기 위한 제도 발전에 관한 사항 △기타 과학기술에 관해 대통령이 부의하는 사항을 심의키로 했다.

자문회의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해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각계 인사 30인 이내 위원으로 구성키로 했다.

자문회의는 또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분과위원회를 둘 수 있고, 자문회의 업무에 관한 조사 연구 등을 위해 6명 이내의 비상근 전문위원을 두도록 했다.

자문회의는 사무를 처리하기 위해 간사 1명을 두며, 간사직은 최영환 과학기술처 차관이 맡기로 했다. 필요시 관계 행정기관과 공공단체 등에 자료·정보·의견 제출이나 기타 협조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4월 25일 정부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과학기술자문회의 규정을 대통령령 12687호로 공포했다.

6월 1일 과학기술처는 대통령 자문기구인 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30명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위원은 조완규 서울대 총장을 비롯해 전직 장관과 한국경제를 대표하는 경제단체장, 재벌 총수, 대학총장, 언론계 인사 등 과학기술계·경제계·산업계·학계 등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저명 인사들이었다.

이날 선정한 자문위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기초과학(5명)=△김시중(고려대 부총장) △이상대(서울대 교수) △김무식(한국과학기술원 교수) △조완규(서울대 총장) △조용섭(서울대 교수)

◇생산·응용기술(6명)=△김성진(전 과학기술처 장관) △김영욱(아주대 교수) △오명(전 체신부 장관) △이용태(한국정보산업연합회장) △채영복(한국화학연구소장) △최형섭(전 과학기술처 장관)

◇복지기술(4명)=△권태완(한국식품개발원장) △박영호(부산수대 학장) △박익수(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 △이경서(국제화재 사장)

◇경제산업(3명)=△김선홍(기아산업 사장) △정명식(포항제철 사장) △최종현(선경그룹 회장)

◇기술관련단체장(6명)=△권이혁(한국과학기술단체연합회장) △김상하(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김채겸(한국산업기술협회장) △신태환(전 대한민국학술원장) △류창순(전국경제인연합회장) △정근모(한국과학재단 이사장)

◇교육·사회(6명)=△김안제(서울대 환경대학원장) △김진현(동아일보 논설주간) △박영식(연세대 총장) △서영훈(KBS 사장) △정의숙(이화여대 총장) △조선웅(전북대 교무처장)

6월 5일 오전 노태우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조완규 서울대 총장 등 과학기술자문회의 의원 30명에게 위촉장을 주고 이들과 오찬을 함께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과학기술자문회의는 과학기술 정책 전반을 다루는, 과학기술에 관한 국가최고심의기구가 되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자문회의는 이날 첫 회의를 열고 위원장에 조완규 서울대 총장을 선임했다.

조완규 위원장은 경력이 화려한 과학자였다. 서울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그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이학 석사와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와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원을 거쳐 서울대 교수, 자연과학대학장, 부총장, 총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이후 노태우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거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광주과학기술원 이사장,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조 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각계 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과학기술 진흥대책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조 위원장은 “자문회의에 3개 분과를 두고 운영하겠다. 제1분과는 과학기술개발 대상과 우선 순위, 지원 확보와 배분 등, 제2분과는 과학기술혁신 전략과 산업 발전 전략, 제3분과는 과학기술·교육·문화·정치·사회·복지 등을 다룬다”고 설명했다.

조 위원장은 “자문회의는 난상토론이 원칙이며, 회의 결과는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겠다”면서 “지금은 정부조직법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자문회의를 구성했지만 국회에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법을 제정하면 헌법 127조에 따라 헌법기구로 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문회의 사무국은 한국과학기술원 부설 과학기술정책연구평가센터(현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 두기로 했다.

6월 21일 과학기술자문회의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대화사무국(현 남북관계관리단)에서 제2차 회의를 열고 3명의 분과 위원장을 선출했다.

제1분과 위원장은 정근모 한국과학재단 이사장, 제2분과 위원장에 이용태 한국정보산업연합회장(현 박약회 회장), 제3분과 위원장에 권태완 한국식품개발연구원장(현 한국식품연구원)을 각각 선출했다.

과학기술자문회의는 7월 14~15일 서울 북악파크호텔에서 제3차 회의를 열고 분과별 추진 안건과 운영 방안 등을 토의했다.

자문회의는 회의에서 과학기술 투자의 획기적인 확대 방안, 과학기술 행정의 합리적인 개편 방안, 대학 기초연구 활성화 방안, 첨단기술의 국책연구 방안, 초·중등 과학교육 육성방안, 전 국토의 균형 발전과 과학기술 사업, 과학기술 확산 등 7개 과제를 집중 토론했다.

자문회의는 또 주요 과제를 전문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전문위원 6명을 위촉했다.

이날 위촉한 전문위원은 안문석 고려대 교수, 강민호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선임연구원, 박신종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선임연구원, 박원훈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조정부장, 안충영 중앙대 교수, 이원영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등이다.

자문회의는 분야별 전문가를 초청해서 정책토론회를 열고 과학기술 관련 부처 장관 등을 불러 과학기술 육성정책과 미래기술 육성 대책 등을 논의했다. 그 결과는 가감없이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이런 가운데 과학기술처는 1990년대 들어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의 법 제정을 서둘렀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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