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릴리와 손잡은 펩트론, 가치 입증한 조건 세 가지
“펩트론에 유리하게 계약 체결돼”
국내 바이오 기업 펩트론이 비만 치료제를 개발한 미국 일라이 릴리와 손을 잡았다. 회사는 장기지속형 약물 전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릴리는 펩트론 기술로 반감기가 짧아 일주일에 한 번씩 주사를 놔야 하는 비만 치료제의 불편함을 개선하려는 것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비만 치료제 성능 향상을 꾀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바이오 기업의 장기지속형 주사제 기술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15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펩트론은 지난주부터 일라이 릴리와 14개월 동안 장기지속형 치료제 개발을 위한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펩트론이 보유한 장기지속형 주사제 기술에 일라이 릴리의 펩타이드(단백질 조각) 계열 약물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비만 치료제에 적용되면 일주일에 한 번씩 투여하던 것을 3~4주 간격으로 늘릴 수 있다. 회사는 계약 비밀유지 조항에 따라 계약금과 파이프라인(신약후보물질)은 밝히지 않았지만, 공시를 통해 ‘약물들’과 ‘비독점’, ‘공동연구위원회’라는 주목할 만한 원칙을 공개했다. 이 세 가지 특징이 그동안 한국 기업이 체결한 글로벌 제약사와의 공동 연구 계약 사이에 차이점을 만들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펩트론이 일라이 릴리와 함께 연구할 기술은 ‘스마트데포(SmartDepot)’이다. 이 기술은 몸에서 분해되는 구슬에 약물을 담아 긴 기간 동안 서서히 내보내는 방식이다. 서서히 약물을 방출한다는 뜻에서 흔히 ‘서방형(徐放形)’ 주사제로도 불린다. 펩트론은 일라이 릴리와 비만 치료제 분야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국내 첫 바이오기업이 됐다.
우선 공시에 공개된 ‘약물들’이라는 표현은 펩트론과 일라이 릴리의 공동 연구가 비만 치료제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라이 릴리의 펩타이드 제제는 부작용이 낮고 쉽게 제조할 수 있지만, 몸에 흡수되기 전에 빠르게 분해돼 약효가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일라이 릴리는 차세대 비만 치료제 후보물질인 레타트루타이드 같은 다른 펩타이드 약물을 스마트데포에 적용해볼 가능성이 크다.
‘비독점 라이선스’도 주목해 볼 만하다. 펩트론의 시가총액은 이날 기준 1조6000억원으로, 일라이 릴리(1200조원)가 회사 규모 면에서 750배 크다. 국내 바이오 기업은 글로벌 제약사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회라고 여기는 만큼, 일라이 릴리가 더 유리한 계약 조건을 걸 수 있었다. 하지만 비독점으로 계약을 체결해 펩트론은 일라이 릴리 외 다른 기업에도 추가적으로 기술을 수출할 수 있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장기지속형 약물 기술은 환자 편의성을 위해 앞으로 클 수밖에 없는 시장”이라며 “아마 일라이 릴리는 독점으로 펩트론 기술 관련 계약을 체결하고 싶었겠지만, 기술력을 인정받아 펩트론에 유리하게 방향이 설정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동연구위원회’를 구성해 두 회사의 인적 교류도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국내 제약사와 바이오 기업은 글로벌 제약사로 기술 수출을 진행할 때 일반적으로 임상시험이나 공동 연구에 참여하지 못했다. 반면 펩트론은 일라이 릴리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성장 발판을 마련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펩트론 관계자는 “(일라이 릴리와 체결한) 계약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해줄 수 없다”면서도 “펩트론은 서방형 기술을 상업화에 성공한 기업으로서 일라이 릴리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중심으로 글로벌 제약사와 협업하는 국내 바이오 기업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인벤티지랩은 지난달 독일 베링거인겔하임과 장기지속형 펩타이드 신약 공동개발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지투지바이오도 장기지속형 기술 ‘이노램프’로 글로벌 빅파마와 당뇨·비만 치료제 공동개발 협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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