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1인 32역’ 김성녀 “70살 넘어 스무살 연기 쑥스러워”

임석규 기자 2024. 10. 1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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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중반 배우가 55살에 초연한 연극을 20년째 이어가고 있다.

1인 32역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김성녀는 "홍길동, 이도령, 제갈공명 등 남성 역할도 많이 해봤다"며 "마당놀이와 뮤지컬, 창극 등 다양한 무대에서 했던 경험이 조각처럼 맞춰지면서 32번의 연기 전환이 가능했던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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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드라마 ‘벽 속의 요정’ 초연 20돌 맞아
31~11월1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
배우 김성녀가 지난 1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벽 속의 요정’ 20돌 간담회를 열었다. 극단 미추 제공

70대 중반 배우가 55살에 초연한 연극을 20년째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덮친 2020~21년을 빼곤 2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국내 34개 도시, 국외 8차례를 포함해 337회 공연을 넘겼다. 배우 김성녀(74)와 그가 1인 32역을 맡아 춤추고 노래하며 연기하는 뮤지컬 모노드라마 ‘벽 속의 요정’ 이야기다. 김성녀는 이 작품 초연 20돌을 맞아 오는 31일부터 다음달 10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에스(S)씨어터에서 이 작품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다.

“10년만 하겠다고 호언장담했었는데 어느새 20년이 됐네요.” 지난 14일 기자들과 만난 김성녀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아직도 관객이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시는 걸 보면서 살아있다는 게 아름답다는 긍정의 신호는 누구한테라도 필요한 얘기란 걸 알게 됐어요.” 그는 “제게 영광의 월계관을 씌워준 작품이자, 마당놀이 배우로 인식되던 저를 연극 배우로 만들어준 제 대표작”이라며 각별한 애정을 나타냈다. 이 작품은 2005년 초연 당시 수많은 연극상을 휩쓸었다. 김성녀의 남편 손진책이 줄곧 연출을 맡았다.

배우 김성녀가 1인 32역을 맡아 연기하는 모노드라마 ‘벽 속의 요정’ 2005년 초연 장면. 극단 미추 제공

원작은 스페인 내전 당시 30년 동안 벽 속에 몸을 숨긴 채 살았던 사람의 실화를 일본 극작가 후쿠다 요시유키가 쓴 희곡이다. 극작가 배삼식은 이를 한국전쟁과 이후 40년에 이르는 우리 현대사를 배경으로 각색했다. “배삼식 작가가 워낙 각색을 잘했어요. 재창작에 가깝지요.” 김성녀는 “일본 원작자가 자기 작품을 다 줄 테니 한국에서 각색해보라고 할 정도로 배삼식씨 각색을 맘에 들어 했다”고 전했다. 배삼식은 지난해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벽 속의 요정’을 각색할 때는 여름 내내 국회도서관에 틀어박혀 노인들의 구술 채록을 들추고 잡지를 열람했다”고 밝힌 바 있다.

2시간10분에 이르는 러닝타임 동안 5살 아이부터 중학생, 20대 딸과 경찰 등 32명의 다양한 인간군상이 나온다. 하지만 정작 무대 위 배우는 김성녀 한명뿐. 노래도 12곡이나 불러야 한다. 1인 32역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김성녀는 “홍길동, 이도령, 제갈공명 등 남성 역할도 많이 해봤다”며 “마당놀이와 뮤지컬, 창극 등 다양한 무대에서 했던 경험이 조각처럼 맞춰지면서 32번의 연기 전환이 가능했던 것 같다”고 했다.

1인 32역을 맡아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는 ‘벽 속의 요정’을 초연했던 2005년 당시 김성녀는 55살이었다. 극단 미추 제공

가장 어려운 배역이 뭐냐는 질문엔 “‘아이는 노인과 통한다’고, 다섯살 소녀는 오히려 쉽다. 70살 넘어가니 춤추고 요염 부리고 연애하는 스무살 처녀 역할이 너무 쑥스럽고 창피하다”며 웃었다. “연기를 하면서 ‘모노드라마가 이렇게 힘들고 외롭고 어려운 것이구나’라는 걸 절실하게 느꼈어요.” 그는 “진부한 연기가 되지 않을까 늘 조바심을 내며 연기했다”며 이 작품과 함께해온 지난 20년을 돌이켰다.

그의 나이 이제 70대 중반. 언제까지 이 작품을 할 수 있을지 그 자신도 알 수 없다. “처음엔 활화산처럼 에너지를 쏟아내고 자빠질 정도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힘 조절이 가능해졌어요. 이젠 욕심부리지 말고 내 나이에 맞는 연기와 노래를 하려고 합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두시간 동안 춤추고 노래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다”며 “이번에 잘되면 30년까지 해볼 것이고, 완성도가 떨어지면 그것이 ‘배우의 무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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