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배우 전무송·전현아 부녀의 연극 ‘더 파더(The Father)’

양형모 기자 2024. 10. 1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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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전무송, 전현아 실제 부녀가 극중 부녀를 연기하는 연극 ‘더 파더’의 포스터.
나(앙드레)는 프랑스 파리의 아파트에서 평화롭고도 무료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런 일상 속에 유일하게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나의 첫째 딸 ‘안느’. 어느 날 ‘안느’가 갑자기 사랑하는 연인 ‘피에르’와 함께 런던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그 순간부터 ‘안느’가 내 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뿐인가? 30년을 넘게 살아온 집은 눈을 돌릴 때마다 낯선 집처럼 바뀌어있다. 자꾸만 사라지는 시계와 찾아오는 낯선 손님까지… ‘안느’에게 하소연해보지만 ‘안느’는 헛소리만 늘어놓는다.

잠깐, ‘안느’가 내 딸이 맞기는 한 걸까?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낯설어진다. 오래된 내 집, 내 딸, 내 시계, 나 자신까지도.

공연예술 창작집단 스튜디오반(대표, 연출 이강선)이 전무송 주연의 연극 ‘더 파더(The Father)’를 11월 15일부터 12월 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무대에 올린다.

지난 해, 실제 부녀 관계인 배우 전무송과 그의 딸 배우 전현아가 극중 부녀로 등장하면서 화제를 모았던 연극 ‘더 파더(The Father)’는 호평에 힘입어 올해에도 같은 극장, 같은 배우로 관객을 만나게 됐다.

몰리에르상에서 아카데미상까지, 연극에서 영화로 이어지는 작품의 품격

연극 ‘더 파더(The Father)’는 자신의 시간과 기억으로부터 유리되는 치매 환자의 모습을 정교하게 그려낸 프랑스 작가 플로리앙 젤레르(Florian Zeller)의 작품이다. 2012년 초연 이후 프랑스 최고 연극상인 몰리에르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며 프랑스 극장가를 넘어 런던, 뉴욕 브로드웨이까지 사로잡은 연극이 됐다.

치매라는 보편적 고통의 예술적 통찰과 묘사를 이뤄낸 플로리앙 젤레르(Florian Zeller)는 이후 이 연극을 바탕으로 자신이 직접 영화화에 나섰고, 안소니 홉킨스 주연의 영화 ‘The Father’는 2021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각색상 등 주요 부문에서 수상했다. 젤레르 감독은 자신의 희곡을 영화로 재해석하며, 인간의 기억과 자아 상실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시청각적 방식으로도 성공적으로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버지 앙드레 역의 배우 전무송. 사진제공=스튜디오 쉼표

앙드레의 현실, 인간의 비극적 운명 번역가 임혜경은 말한다. 주인공인 아버지 앙드레는 겉으로는 단순한 늙은이처럼 보이지만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내면에 수많은 인격을 품고 있는 복합적인 성격의 인물이다. 시계(시간)에 대한 강박증을 보이는 아버지 캐릭터는 고집스럽고, 변덕스럽고, 사납고, 격분하고, 낙담하고, 농담도 잘하고 유머가 있으며, 장난기도 있고, 그야말로 대조적인 여러 면을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존재다.

그런 그가 자기 딸 안느, 간병인, 간호사도 혼돈하고,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도 혼돈하고, 날짜도 잊고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헤맨다. 자기 자신도 잊어버리고, 울면서 엄마를 찾으며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불쌍한 아이 같은 존재로 변해 간다.

작가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이 노인의 점진적인 퇴화 과정, 그와 그의 가족이 겪는 혼란, 기억상실로 이어가는 소통부재를 멜로 드라마식으로 비장미 없이 그냥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전무송과 전현아, 부녀 배우의 특별한 앙상블 연기 경력 60년의 전무송과 30년의 전현아 부녀의 연기를 무대에서 다시 만나는 것은 특별한 선물을 선사받는 것 만큼이나 설레는 경험이다. 자신의 기억으로부터 배제되는 외롭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앙드레’역의 전무송은 탁월한 몸짓과 언어로 풀어내고, 그의 딸 ‘안느’로 등장하는 전현아 또한 가족에 대한 애정과 핍진함을 절절히 묘사한다.

전무송은 흐려지는 기억 속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아버지의 위신을 곧추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80세 노인의 모습으로, 전현아는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를 안타깝게 지켜보면서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인물로, 각각의 위치에서 극의 긴장과 갈등을 이끌어 나간다. 이들이 함께 무대에 서서 부녀의 복잡한 감정선을 표현하는 장면은, 공연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2023년 공연 모습. 사진제공=스튜디오 쉼표

무대 위의 섬세한 감성 미학, 이강선 연출 연극 ‘더 파더(The Father)’의 연출을 맡은 이강선 스튜디오반 대표는 간결한 무대구성을 통해 섬세한 감정에 집중하게 하는 연출가이다. 이강선은 작품 속에서 앙드레의 내면적 갈등과 혼란을 밀도 있게 그려내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관극 경험을 제공한다. 그의 연출 스타일은 지나치게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절제된 방식으로 비극적 현실을 그려내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앙드레가 겪는 기억 상실과 그의 딸 안느가 이를 받아들이며 겪는 혼란은 이강선의 손길을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 이강선 연출은 이번 공연에서도 특유의 연출력으로 관객들에게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 상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예정이다.

이강선 연출은 “이 연극은 불안과 의심, 집착으로 극 전반에 흐르는 공포심을 극대화하여 주인공인 앙드레의 비극성을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했다.

사진제공=스튜디오 쉼표·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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