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이 중증장애인 일할 기회 박탈" 서울숲 앞 단식 시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본부, 주차장 사업 낙찰가 50% 先 요구
기업 분할납입 요청에 "공고대로 해라"
입찰보증금 1억6000만 원도 날릴 처지
"돈이 없어 직원들 월급이 밀리는 바람에 팀장이 사채까지 써서 봉급을 주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서울숲길 한가운데. '단식 7일째'라고 크게 써붙인 현수막 아래 김민수 장애인노조 위원장이 숨을 가삐 쉬며 누워있었다. 며칠째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탓인지 입술이 메말라 군데군데 부르터 있었다. 그는 서울숲 한가운데 자리 잡은 서울시 미래한강본부(한강본부) 사무실을 가리키며 "장애인들은 주차장 관리 같은 규모 큰 사업은 하지 말고 사무용품 납품 같은 작은 일만 하라는 거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 위원장이 단식 시위를 벌이는 이유는 중증장애인 생산시설인 '꽃이피네'의 권익 보호를 위해서다. 꽃이피네는 한강공원 주차장 사업권 입찰계약을 놓고 한강본부와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장애인들은 자신들이 정당하게 따낸 낙찰자 지위를 한강본부가 박탈하고 입찰보증금 1억6,000만 원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한강본부 측은 법대로 처리했다며 맞서고 있다.
한강공원 주차장 사업권 따낸 장애인시설... 하지만
갈등의 시작은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강본부는 지난해 11월 한강공원 제4지역 주차시설 사용허가에 대한 입찰 공고를 올렸다. 서울숲 인근 크기 2만㎡, 663대 주차공간에 대한 관리를 맡길 업체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한강본부는 한강 주변 지역 관리를 담당하는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이다.
꽃이피네도 입찰에 참여했다. 중증장애인생산품우선구매특별법은 장애인 생산시설에서 만드는 재화나 용역, 서비스에 대한 공공기관의 우선구매를 의무화하고 있다. 노동시장에서 외면받는 중증장애인 고용을 확대하고 이들의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20명의 직원 중 대다수가 중증장애인인 꽃이피네는 이런 장애인특별법의 취지와 이번 사업이 잘 맞다고 생각했다. 꽃이피네는 주차장 서비스업을 할 수 있도록 정부에도 정식 등록된 곳이라 운영을 잘 해낼 자신도 있었다. 꽃이피네는 여기저기 돈을 빌려 입찰보증금 1억6,000만 원(입찰가의 5%)을 마련했고, 총 32억 원에 2년간 사업권을 낙찰받았다. 직원들은 날아갈듯이 기뻤다.
"법대로 분할납부" vs "공고대로 불가능"
문제는 그 이후였다. 한강본부 측은 공고대로 낙찰가의 50%인 16억 원을 선납부할 것을 요구했다. 반면, 꽃이피네는 행정재산 사용료 전액을 한꺼번에 내는 것이 곤란한 경우 분할납부할 수 있다는 공유재산법 등을 근거로 12회 분할납부를 요청했다.
그러자 한강본부는 "계약을 진행할 수 없다"며 분할납부 요청을 거부했다. 이에 꽃이피네 직원들은 한강본부 앞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하지만 곧 한강본부와의 협의 끝에 해산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본부장이 '내년엔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라며 올해 사업에 사업자로 선정해줄 것 같은 말을 해 집회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꽃이피네 측은 이를 올해는 낙찰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 계약보증금 반환청구권도 내세우지 않았다. 올해 수의계약(비경쟁입찰)을 기대하며 입찰보증금 1억6,000만 원을 돌려달라고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올해도 한강본부 측은 경쟁입찰 원칙을 들고 나왔다. 꽃이피네 측은 그동안 한강본부가 △외국공무원 등 방문객을 위한 기념품 △전원단지 조경을 위한 코스모스·유채 종자 등을 중증장애인 생산시설과의 수의계약을 통해 구매한 선례가 있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청구권 시효 지나 입찰보증금 반환 불가
결국 장애인들은 다시 한번 한강본부 앞에 집결했다. 지난 4일에는 피해회복을 요구하며 한강본부 시설을 점거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10일째 단식투쟁 중 건강 문제로 쓰러졌다.
한강본부가 원칙론을 고수하며 꿈쩍도 안 하는 사이 생계가 막막한 중증장애인 직원들은 큰 고통을 받고 있다. 노조 등에 따르면, 현재 꽃이피네 직원들은 카드대출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고 시설반장이 사채를 빌려 직원들 월급을 겨우 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강본부는 법과 절차대로 했다는 입장이다. 분할납부의 경우 협의가 가능할 뿐,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반드시 허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입찰보증금은 반환청구권 시효(6개월)가 지나 돌려줄 수 없다고 한다. "내년에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취지의 이야기는 '인사치레'였으며 서울시에 법률자문을 구해 주차장서비스는 수의계약 대상이 아니라는 의견을 받았다고도 강조했다. 한강본부 관계자는 "저희 입장에서도 배려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라며 "앞으로 입찰공고에 분할납부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인권위에 진정 "재량권 남용, 사회적 약자에 불이익"
하지만 김 위원장은 "차후 분할납부 조항을 넣겠다는 것 자체가 본인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라고 "해명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반발했다.
꽃이피네의 법률자문을 맡은 법무법인 미추홀은 "한강본부는 재량권 행사의 한계를 일탈·남용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사용료 분할납부를 허용한다 해도 나머지 사용료는 보증보험증권으로 지급이 보장돼 한강본부가 입는 불이익은 예상하기 어렵다"며 "낙찰자 지위 취소·사용허가 취소로 인해 한강본부가 얻는 공익에 비해 입찰보증금 몰수 등 손해는 당사자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고 설명했다.
한강본부가 낙찰가의 절반을 선납하라고 요구하는 건 사업권만 따놓고 중간에 나 몰라라 하는 행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보증보험이란 안전장치가 있어 이런 손해를 볼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분할납부를 받아들이지 않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단 뜻이다. 더 중요한 건 한강본부가 공공기관이라는 점이다. 장애인특별법까지 만들어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 정책방향인데, 오히려 공공기관이 장애인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결국 꽃이피네는 지난 7일 국가인권위원회에 한강본부의 행위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며 진정서를 냈다. 진정서엔 "실질적 평등의 이룩에 앞장서야 할 공공기관이 부적절한 이유로 장애인단체에 불이익을 준 것은 차별행위이자 객관성과 공정성을 해치는 행위"라는 의견이 담겼다. 양측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피해를 보는 건 지금도 묵묵히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는 꽃이피네의 중증장애인들이다. 김 위원장은 "입찰보증금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게 해달라"며 마른 입술을 매만졌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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