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입성·최대 회고전… 현대미술 심장부 ‘K-아트의 침공’
‘터바인홀’서 개인전 이미래
최연소·한국인 최초 타이틀
한강 ‘부커상’에 비견될 성과
세계적 설치미술가 양혜규
‘헤이워드’서 예술활동 조명
20년간의 120여 작품 선봬
런던=글·사진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미술에는 노벨상이 없다. 넓은 범위에서 건축가에게 주는 ‘프리츠커상’이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지만 대중적이진 않다. 또한, 현대미술은 작가 한 사람이 하나의 장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형태와 소재, 개념과 방식이 다양하고 산발적이다. 따라서 작가의 역량이나 작품의 예술적 가치는 특정 상(賞)이 아닌, 특정 공간에서의 전시가 증명하고 평가한다. 한강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대중문화가 촉발한 ‘한류 침공’이 순수예술에까지 확장된 것을 보는 지금,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영국 런던에서는 ‘K-아트’가 ‘최초’ ‘최대’의 기록을 세우고 있다. 영국 대표 미술관 테이트모던 터바인홀에 최연소 작가로 입성, 한국 작가 최초의 개인전을 여는 이미래를 비롯해 런던 주요 미술관과 화랑을 한국 작가들이 점령했다. K-팝과 드라마, 영화가 주도한 ‘코리안 인베이전’의 완성이자, 21세기 현대미술의 최전선이 된 K-아트 현장을 생중계한다.
◇가디언·타임스가 대서특필…英 최고 미술관의 최연소·최초 한국 작가 =가디언은 별 둘, 텔레그래프는 별 넷(별 다섯 만점 기준)을 줬다. 지난 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터바인홀에서 개막한 이미래 작가의 개인전 ‘현대 커미션: 이미래: 열린 상처(Open Wound)’에 대한 영국 주요 일간지의 평가다. 공사장에서 쓰이는 메시 천에 분홍빛 물을 들여 ‘피부’(스킨·skin)라 이름 지었다. 첫인상은 공포와 기괴함. 짐승의 내장일까, 사람의 가죽일까. 작가는 스킨을 건조해 체인에 걸어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았다. 현재는 100여 점. 매달 조금씩 추가돼 전시가 종료되는 내년 3월 16일엔 총 150여 점이 하늘에 열린다. 혹시 이건 위로받지 못하고 떠나버린 익명의 존재들 아닐까.
가디언은 “싸구려 핼러윈 장식 같다”며 혹평했다. 야박한 듯하지만, 본래 예술 비평에 만장일치란 없다. 별 넷을 준 텔레그래프는 “할리우드 최고의 무대 디자인보다 화려하다”고 호평했고, 타임스도 “천상의 쇼”라고 극찬했다. 점수와 말에 매몰될 필요는 없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이 30대 중반의 젊은 예술인의 작품을, 영국 3대 유력 일간지가 비중 있게 다룬 것이 핵심이다. 테이트모던의 권위와 명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3300㎡(1000평), 높이 35m에 달하는 공간을 뚝심 있게 자신의 세계로 오롯하게 채워낸 이 작가는 이렇게 지금 유럽 미술신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이 됐다. 문학으로 치면, 노벨상까진 몰라도, 한강 작가가 2016년에 받은 영국 부커상에 비견할 만하다.
터바인홀은 테이트모던의 열린 광장 같다. 모든 관람객이 지나가고, 또 어디에서도 조망이 가능하다. 개막일에 현장에서 만난 이 작가는 “이 넓은 공간을 ‘드러난 짐승의 내장’처럼 구성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전시장은 그 자체로 ‘발가벗겨진’ 이미래의 시공간처럼 느껴진다.
작가는 그동안 건축에 사용되는 천과 철근, 골조물 등 삭막한 도시의 요소들로 인간과 세계를 탐구해 왔다. 전시는 예의 그것처럼 차갑고 잔인하지만 따뜻함도 품었다. 그것은 예전 화력발전소였던 터바인홀의 역사성을 작가가 십분 활용했기 때문. 하이라이트는 홀 중앙부에 ‘심장’처럼 자리하고, 가끔 ‘철컹’ 소리를 내며 돌고 있는 ‘터빈 엔진’이다. 작가는 발전소였던 홀에 과거에 존재했을 법한 터빈 엔진을 새로 제작해 걸었고, 터빈에서 떨어지는 물은 스킨에 색을 입힌다. ‘똑, 똑’ 하는 물소리가 아이러니하게도 산업혁명의 상징인 곳에서 태곳적 신비를 느끼게 한다. 이 소리가 천장의 스킨들을 부활시킬 것만 같다. 이 작가의 ‘열린 상처’는 뭘까. 그는 “예술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상처”라면서도,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것은 아름답다”고 힘주어 말했다.
◇윤이상의 음악이 런던에 흐른다…양혜규에게 건물 전체 내어준 헤이워드=템스강을 가로지르는 런던 브리지를 건너면, 멀리서부터 사우스뱅크 센터 외벽에 걸린 거대한 양혜규의 전시 포스터가 반긴다. 이 센터에 자리한 런던 대표 공공미술관 헤이워드 갤러리는 전시장 전체를 다 ‘털어’,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양혜규를 연구·조사하는 데 썼다. 양 작가의 20년 예술 활동을 총망라, 120여 점을 선보이는 회고전 ‘윤년(Leap Year)’이다. 작가의 예술세계를 탐구하는 취지의 ‘서베이’ 전시다. 지난 9일 방문한 갤러리는 얼마나 깊고, 넓게 작가를 ‘팠는지’ 첫 개인전이 열린 인천 외갓집을 풀어낸 영상과 설치물 ‘사동 30번지’(2006)를 20여 년 만에 재현했으며, 전시 후 철거된 작품을 담아 보관한 상자를 다시 ‘작품화’해 세계 미술신의 주목을 받은 ‘창고 피스’(2004)도 오랜만에 펼쳐 놓는다.
융 마 큐레이터가 진두지휘한 전시는 양 작가의 작품세계를 사회, 문화, 정치적 맥락에서 다각도로 살펴보는데, 해석이 분분하거나 관객으로서는 공부가 필요한 부분들이 많지만, 그만큼 지적이고 수준이 높다. 특히 갤러리 커미션(주문)으로 제작된 신작 ‘윤에 따른 엇갈린 랑데부’(2024)에서는 윤이상의 ‘더블 콘체르토’가 흘러나온다. 견우와 직녀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만든 음악이 작가의 전매특허 블라인드 사이를 채우며 분단, 전쟁 등 인류 보편의 과제를 이야기한다. 지난 9일 갤러리에서 만난 작가는 전시에 대해서 “갤러리 측에 온전히 맡겼다”면서 “그것이 지금 양혜규라는 사람, 예술가의 ‘성숙도’이다”라고 설명했다.
정희민 등 신진들도 런던 화랑가 ‘접수’
영국 런던을 대표하는 양대 현대미술관인 테이트모던과 헤이워드 갤러리를 이미래와 양혜규 두 한국 작가가 장악한 가운데, 런던의 소호 등 시내 곳곳에서도 한국인 신진 작가와 저명한 건축가 등 다양한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가장 이목을 끄는 건 지난해 유럽 명문 화랑 타데우스 로팍과 전속계약을 맺은 정희민(36)의 유럽 첫 전시 ‘움브라(Umbra·사진)’다. 이 갤러리 런던지점에서 지난 9일(현지시간) 개막해 11월 20일까지 이어지는 전시는 한국의 전통 장례 의식 ‘초분’을 재해석해 회화와 설치물, 영상으로 구현했다. 이 갤러리에서 한국 작가 개인전이 열리는 건 이불 이후 두 번째다.
런던 켄싱턴 가든 내 서펜타인 갤러리 앞마당에서는 건축가 조민석(57)의 파빌리온 ‘군도의 여백’을 오는 27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조 건축가는 서펜타인 갤러리가 매년 조성하는 파빌리온의 첫 한국인 설계자로 선정돼 화제가 됐다. 파빌리온에 참여한 건축가 중 상당수가 건축계 노벨상 격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바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2022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이미래 작가와 함께 참여했던 설치미술가 정금형(44)은 실험적 전시로 유명한 런던현대미술관(ICA)에서 개인전 ‘공사 중’을 12월 5일까지, 동양화와 서양화를 융합한 스타일의 회화 작업을 하는 유귀미(39)의 개인전도 알민 레쉬 갤러리 런던지점에서 열리고 있다. 파스텔화 같은 몽환적 필치로 그리움, 따스함 등의 정서를 담백하게 풀어냈다. 11월 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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