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진실 드러내는 작가” … 30년전 한강의 재능 알아본 당신[그립습니다]
김형, 오늘 동검도의 아침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높습니다. 천국에서도 이 경사스러운 소식을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당신이 늘 자랑하던 소설가 한강이 2024년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기쁨을 당신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30여 년 전에 벌써 당신은 ‘한강’이라는 작가를 눈여겨보았습니다. 한강 작가의 특별한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시고, 당신이 생애를 걸쳐 일했던 국민잡지 ‘샘터’에서 그를 기자로 채용했습니다. 1999년 저희가 창간했던 문화영성잡지 ‘들숨날숨’에 그의 작품을 앞세웠던 당신의 지혜와 격려는 놀라웠습니다.
당신의 안목과 선견지명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저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한강 작가의 남다른 예리한 시선과 진리와 진실에 임하는 그의 태도를 늘 주목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을 파헤치고,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숨겨진 진실을 드러낸다고 늘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술이 ‘진리의 드러남’이라면 한강의 작품은 인간의 상처와 고통,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보편적이고 초월적 진실을 면면히 드러내, 엄중하고 세밀하게 알려 줍니다.
이 사실은 진리 앞에 그가 지닌 겸손하고 지순한 아우라와 그의 작품이 일치하고 있음을 저희는 감지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그 작품인 것에 저희는 더 감동을 받습니다.
노벨문학상은 문학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으로 인류에게 가장 큰 이익을 준 작가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품의 문학적 품질, 독창성, 그리고 인류의 공감을 촉진하는 가치와 그 능력에 대한 격려와 찬사라고 생각합니다.
김형, 그의 작품 ‘채식주의자’는 인간의 욕망과 폭력성, 그리고 그에 따른 피폐해 가는 인간성의 파괴를 예리하게 파헤칩니다. 이는 개인의 내면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와 그 안에 내재된 폭력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의 문학은 인간의 내면과 사회를 관통하는 진실을 드러내며 우리에게, 온 세상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성찰을 이끌어 냅니다. 명징하고 예리한 통찰로 무장된 그의 역사의식은 현대 우리 민족이 지닌 거대한 어둠 속에 숨은 폭력성을 진리의 빛으로 그 어둠의 실상을 여지없이 드러내어 치유의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김형,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학과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한국 문학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고, 한국 문학의 다양성과 깊이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는 더 많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해외에서 주목받고, 번역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김형, 살아생전에 당신이 늘 바라던 문학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도 더 높아지고, 문학을 통해 사회문제를 성찰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랑하는 스테파노 인형(仁兄),
당신이 살아계셨다면 오늘은 어디선가 소주 한잔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김형, 형이 늘 말씀하셨듯이 오늘 우리 사회의 폭력성은 더 깊어지고 더 잔인하게 우리의 삶 한복판으로 침투하고 돌진해 오고 있습니다.
말과 언어의 폭력에서부터 생태에 대한 폭력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사회, 교육과 종교에 이르기까지 각가지 형태의 폭력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드러나게 때로는 은밀히 숨은 폭력이 우리 인간성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김형, 이러한 거대한 폭력의 문화에 대항하여 한강 작가의 작품이 다루는 주제들처럼 그 폭력성에 가장 연약함으로 그 거대한 힘 앞에 미력한 희생으로, 거대한 고함에 가장 낮은 목소리로, 폭풍 앞에 미풍으로, 휘황찬란한 뽐냄 앞에 지극한 겸손으로 더 작아지고 더 낮아짐으로 진리는 새싹을 틔우고 거대한 생명나무가 될까요?
김형, 나자렛예수가 어찌하여 ‘야훼의 종’으로 더 낮은 곳으로 더 작은 곳으로, 하느님의 아들이 희생되신 이 진리의 길이 우리 앞에 열려 가기를 김형, 천국에서도 기도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김형, 그리하여 오늘 우리 사회는 물론 인류 생존에 새 장을 열어 갈 수 있는 희망의 문을 열어 가도록 우리 함께 기도해요.
오늘 이 아침 천국에 보내는 나의 이 편지는 우표도 봉투도 필요 없어 당신의 그 넉넉한 미소에 이 글을 싣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우리 다시 만나요.
조광호 동검도채플 주임신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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