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공포가 산업을 만든다
요즘 전기차 시장은 흔히 '캐즘(Chasm)의 늪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한다. 캐즘은 초기 열정적인 소비자, 얼리어답터를 대상으로 성공적인 초기 시장(Early market)을 형성했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주류 시장(Mainstream)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침체 현상을 겪는 것을 말한다. 전기차 역시 마찬가지로 이는 부족한 충전 인프라, 주행거리에 대한 불안감, 높은 구매 가격 등 여러 요인에 기인한다.
캐즘을 극복하기 위해서 다양한 전략이 제시된다. 예를 들어 시장을 세분화해 각 소비층에 적합한 맞춤형 전략을 구사하거나, 사용자 경험을 확대해 기술에 익숙해지도록 유도할 수 있다. 또한 관련 인프라를 확충해 기술의 실효성을 높이거나, 기술 자체를 더욱 발전시켜 기존 시장을 완전히 대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8월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캐즘의 간극을 더욱 넓히는 계기가 된 듯하다. 이미 많은 매체를 통해 알려졌듯이, 전기차 배터리에서 발생하는 화재는 배터리 내부의 급속한 화학 반응으로 인해 소화가 쉽지 않다. 해당 사고는 다수의 차량과 건물까지 큰 피해를 입히며, 전기차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켰다. 이는 단순히 캐즘의 영역을 넘어,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멀리하게 되는 '포비아(Phobia)'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 기술에 대한 두려움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두려움은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에 대한 자연스러운 방어 기제다. '두려움의 과학'이라는 책에서는 두려움에 대한 반응을 경직, 도피, 투쟁으로 정의했다. 인류 초기에는 야생 동물의 위협이나 추위에 대응하기 위해 도피의 방법을 선택했다. 하지만 점차 진화한 사피엔스 종이 출현함으로써 집단화가 이루어지고, 도구를 다루게 되면서, 두려움의 극복 방법은 투쟁의 방식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현재 인류는 두려움에 대한 투쟁의 도구로 기술을 선택했다.
19세기 중반까지 엘리베이터(수직 승강기)는 주로 화물 운송 용도로만 사용됐다. 잦은 고장과 추락 위험으로 인해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은 극도로 위험한 행위로 여겨졌다. 하지만 사업가이자 발명가인 엘리샤 오티스가 케이블이 끊어지더라도 엘리베이터가 추락하지 않도록 막는 안전장치를 개발하면서 산업 전체를 바꾸어 놓았다. 그는 직접 이 기술을 대중들 앞에서 시연함으로써 그 효과를 입증했다. 이 혁신적인 안전장치의 등장으로 인해 사람들의 엘리베이터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줄어들었고, 이는 곧 고층 건물 산업의 급속한 성장으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추락에 대한 공포를 기술로 극복해 현대 도시화 산업의 토대를 마련했다.
현대 인류는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에 있어 경직과 도피에는 비용을 지출하기 꺼린다. 하지만 투쟁에는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 이는 투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삶의 질적 향상과 경제적 이익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즉 '두려움에 맞서는 경제'가 형성됐다. 예를 들어, 식량 고갈에 대한 공포는 농업 혁명을, 질병과 상해에 대한 공포는 의료 산업을 이끌었다. 또한 집단 간 침략에 대한 공포는 군수 산업을,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정보 침해 위협은 보안 산업을 탄생시켰다.
현대 사회는 공포를 더 이상 피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기술 발전의 계기로 삼는다. 공포가 야기하는 문제는 기술과 산업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더 나은 해결책을 찾도록 우리를 자극한다. 결국 캐즘을 극복하는 열쇠는 기술에 대한 공포를 이해하고 이를 해소하려는 적극적인 태도에 달려 있다. 기술에 대한 두려움은 산업의 장애물이기도 하지만, 이를 해결하는 과정은 새로운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다. 날마다 새로운 기술이 쏟아지는 지금, 예측하지 못한 두려움이 다가올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혁신의 씨앗일지도 모른다. 박근엽 한국원자력연구원 기술정책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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