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 따면 계속 일할 수 있잖아요"…노량진으로 모인 5060[현장]
'공시생' 청년 떠난 자리에 중·장년 발길
"노후 자금, 연금으론 미래 대응 어려워"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박정빈 인턴기자 = "은퇴 후 할 수 있는 일들 중에 이게 가장 금전 투자가 적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그래도 한 번 자격증을 따면 그걸 갖고 계속 일 할 수 있으니까 투자 대비 수익은 괜찮죠."
14일 오전 9시께 찾은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 40년 전 이곳에서 대입 재수 시절을 보냈다는 배모(58·남)씨는 머리가 희끗한 60대가 되어 보낼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두 손에는 공부하던 공인중개사 국가자격시험 모의고사지가 들려있었다.
사무직과 영업 등에 몸 담아왔다는 배씨는 지난해 9월, 고민 끝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펜대를 잡았다. 그는 "학원비가 부담되지만 미래를 위해서 그냥 하는 것"이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청년들이 떠난 노량진 학원가에 중·장년들이 몰려들고 있다. 정년을 마친 이들이 제2의 인생을 위해 두 번째 취업 준비에 나선 것이다.
15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노량진에서는 5060세대의 자격증 취득이 증가하며 일대에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가 올해부터 속속 은퇴 연령에 진입하며 노량진 학원가가 다시 북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때 '공무원의 성지'로 불렸던 노량진. 이날은 중·장년의 선호도가 높은 주택관리사, 공인중개사 등 자격증 학원 간판이 도드라져 보였다.
인근 상인들도 노량진 거리의 높아진 연령대를 실감하고 있다. 학원가에서 김밥을 판매하는 오모(66·여)씨는 "예전에는 공무원을 준비하던 젊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는데, 최근에는 공인중개사나 전기기사를 준비하는 중·장년 남성 고객들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30대 여성 조모씨도 "예전에는 노량진에서 나이가 좀 있다고 하면 30대 후반이었는데 요즘에는 40대 후반 정도인 것 같다"고 전했다.
'철밥통'으로 불리며 높은 경쟁률을 자랑했던 공무원의 인기가 상대적으로 시들해졌다. 낮은 임금 등이 그 이유로 꼽힌다. 실제 공무원을 준비하는 청년들도 계속 줄고 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올해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 채용시험 평균 경쟁률은 21.8대 1로 3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각종 자격증 시험 응시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교육전문기업 에듀윌은 주택관리사 자격증 1차 응시자가 2022년 1만8084명에서 지난해 1만8982명, 올해 2만809명으로 매년 늘고 있다고 발표했다. 주택관리사 자격증 시험은 올해 1차 합격자의 69%가 50대 이상일만큼 중·장년의 응시율이 높다.
제조업에서 약 23년을 근무한 엄모(55·남)씨도 재작년부터 공인중개사 시험을 공부하고 있다. 엄씨는 "작년에 한 번 떨어지고 올해 두 번째 시험을 준비 중"이라며 "50대 중반이 돼 공부를 다시 시작하니 결코 쉽지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강의실에 또래 세대가 많다"며 "다들 기억력의 차이, 나이의 한계를 많이 체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제 돋보기 없이는 글을 읽기도 어려운 나이지만, 마냥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이유는 은퇴 후의 삶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장년들의 자격증 취득 열풍은 퇴직 후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그 기저에는 모아둔 노후 자금과 예상 연금 수령액 만으로는 치솟는 물가와 늘어난 평균 수명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불안이 깔려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베이비붐 세대는 연금에 의지할 수도 없고 자녀의 금전적인 효도를 바라기도 어려운 세대"라며 "자격증 준비는 은퇴 후의 삶을 대비하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라고 짚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보통 노인 일자리의 경우 열악한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보니 그나마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고, 일자리의 질이 담보되는 쪽으로 일을 찾는 것이 그런 자격증 취득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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