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언어는 영혼을 나타낸다
얼마 전 아파트 놀이터를 산책하다가 잠시 쉬려고 벤치에 앉았다. 맑은 가을 날씨를 뚫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이 세상 가장 평화로운 풍경 한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잠시 후 이런 감상은 와장창 깨졌다. 어디선가 귀를 의심할 만한 비속어가 들려온 것이다. 아이들 중 몇 명이 욕과 비속어가 섞인 유행어를 주고받으며 놀고 있었다. 청량한 날씨처럼 산뜻했던 기분은 이내 씁쓸해졌다.
학교에 근무할 때 아이들의 언어를 교정해 보려다 실패한 적이 있다. 어려서부터 유튜브를 비롯해 온갖 소셜미디어를 접한 아이들은 언어를 배울 무렵부터 비속어에 노출된다. 학교의 선생님이나 가정의 부모님보다 또래들끼리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게임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한 언어 활동이 많기 때문이다. 이미 비속어를 섞어 사용하는 언어 습관이 굳어진 이후 학교에선 아무리 바로잡으려 해도 쉽지 않았다. 나를 포함해 교사들의 노력은 대부분 수포로 돌아간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도 아이들이 그저 저속한 언어에 덜 노출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이들이 눈살 찌푸려지는 언어를 아무렇지 않게 쓰는 것을 볼 때면 위기감을 느낀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우리의 생각을 형성한다. 어떤 언어를 쓰느냐가 사고의 구조를 결정한다. 예컨대 색깔의 스펙트럼을 표현하는 어휘가 풍부한 언어권에 사는 사람들은 같은 계열 색깔의 미세한 변화에도 뇌가 다르게 반응한다는 연구를 본 적이 있다. 시간을 표현하는 언어가 다른 문화권에선 시간의 흐름, 어제와 오늘과 내일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고 한다.
외국어의 경우,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새로운 영혼을 얻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외국어로 말할 때면 전혀 다른 인격을 가진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모국어일 것이다. 모국어야말로, 우리의 첫 번째 영혼, 고유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를 어떻게 쓰는가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비속어를 쓰는 사람의 생각은 저속할 것이며, 욕을 쓰는 사람은 공격적일 것이다. 이 세상에 맑은 가을 날씨처럼 좀 더 다정하고 따뜻하며 배려심 있는 말들이 넘쳐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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