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근미래의 풍경] 이번엔 메뚜기를 멸종시키죠, 언제든 되살릴 수 있으니까

장강명 소설가 2024. 10. 15. 00: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4회 #멸종 동물 복원
일러스트=박상훈

기술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과학기술과 사회 연구) SF’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써온 장강명 작가가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보게 될지도 모를 기묘한 풍경을 픽션으로 전달합니다.

모리셔스섬에는 도도라는 날지 못하는 새가 살았는데, 17세기 후반에 멸종했다. 한동안 이 새는 어리석음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고, 인간의 생태계 파괴를 고발하는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21세기 초중반에 도도는 새로운 기술의 대명사이자 상징이 됐다. 멸종되었다가 합성생물학 기술로 부활한 최초의 동물이 된 것이다.

도도를 복원한 건 다들 알다시피 한국의 대기업 네카팡그룹이었다. 네카팡은 네이처지에 연구 결과가 실리는 날 기자회견을 열고, 회견장에 살아 있는 도도새 네 마리를 가져왔다. 모리셔스 정부에 도도를 기증하고, 도도 서식지 조성과 도도 연구소 건립에 엄청난 돈을 쓸 거라고 했다. 효과 만점의 PR 전략이었다. 이후로 네카팡을 대신해 모리셔스 정부가 멸종 동물 복원을 비판하는 여론에 맞섰다. 네카팡과 모리셔스 양쪽 모두 남는 장사였다. 도도를 보겠다고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모리셔스로 몰려들었고, 네카팡의 주가는 몇 배로 치솟았다. 네카팡은 그런 방식으로 여론의 비판을 피하며 멸종 동물을 부활시켰다. 서식지로 빈곤 지역을 고르고, 동물을 복원해 풀어 놓고, 지역 주민들이 관광을 비롯한 문화 상품 수익을 거두게 했다. 포클랜드늑대, 세이셸앵무, 마르케사스쇠물닭을 그렇게 되살렸다.

네카팡이 본격적으로 관광 수익 배분에 참여한 것은 태즈메이니아데블을 되살렸을 때였다. 관광 수익이 아닌 다른 수익을 올린 건 여행비둘기를 복원했을 때였다. 여행비둘기는 19세기 중반까지 미국에 무려 50억마리가 살았다. 가슴살이 맛있는 새로 유명했고, 통조림과 알 요리도 인기를 끌었다. 개체 수가 너무나 많았기에 아무도 멸종을 걱정하지 않았는데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20세기 초에 갑자기 사라졌다. 네카팡은 미국 미시시피주와 손잡고 여행비둘기를 복원했다. 네카팡과 미시시피주는 함께 축산 기업을 세웠고, 거기서 생산한 여행비둘기 가슴살과 알을 최고급 식당에 먼저 공급했다.

동물 단체와 환경 단체가 식당 앞에서 시위를 벌였지만 전설의 요리를 맛보겠다는 미식가들의 방문을 막을 수는 없었다. 사실 동물 단체가 시위를 벌일수록 여행비둘기 요리가 홍보됐다. 얼마 뒤 네카팡과 미시시피주는 ‘미시시피 비둘기 식당’이라는 레스토랑 체인을 열었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셰프들과 손잡고 옛 여행비둘기 요리들을 재현했고, 신메뉴도 발표했다. 레스토랑 체인을 홍보하러 토크쇼에 출연한 네카팡의 이메리 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식당이 생겨야 여행비둘기를 보호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소, 돼지, 닭은 멸종할 염려가 없죠. 축산 농가가 그런 일을 막으니까요. 여행비둘기도 그렇게 인간과 공존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여행비둘기 고기는 kg당 탄소 배출량이 소의 20분의 1도 안 됩니다.”

미시시피 주지사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와 유전적으로 100% 동일한 현재의 여행비둘기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주장이 무슨 뜻입니까? 인간이 멸종시킨 여행비둘기는 멸종된 상태로 두는 게 자연스럽단 겁니까? 우리 주의 주 수입원은 얼마 전까지 카지노였습니다. 도박보다 요식업이 일자리를 더 많이 창출하고,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도 좋습니다.”

네카팡이 코스타리카 정부와 테마파크 건설을 논의 중이라는 기사가 나왔을 때 몇몇 사람은 드디어 ‘쥬라기 공원’이 현실화된다며 환호했다. 정작 네카팡과 코스타리카 정부의 발표는 공룡 복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코스타리카가 정글 유원지를 짓는데, 만약 그 과정에서 지역 고유의 벌새나 나비가 멸종된다면 네카팡이 되살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네카팡은 중국과 동남아, 아프리카 국가의 대규모 토목 사업에 일종의 보험사로 참여했다. 댐 건설로 중국장수도롱뇽이, 리조트 건설로 수마트라오랑우탄이, 발전소 건설로 이집트땅거북이 멸종된다면, 네카팡이 되살리겠다고 했다. 개발 사업에 나선 국가들은 네카팡의 기술력을 추켜세우며 환경 단체의 반대를 묵살했다. 인도자유주의연구소는 벵골대머리수리 서식지를 보호하면서 자기 부상 철도를 건설하지 말고 그 동물을 멸종시켰다가 철도 공사를 마친 뒤 복원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멸종 동물 복원 기술은 편리한 면죄부가 됐다. 여행비둘기가 복원되고 꼭 5년 뒤, 몬태나주의 광활한 농경지를 로키산메뚜기 떼가 덮쳤다. 20세기 초에 멸종된 줄 알았던 곤충이었다. 메뚜기 떼는 점점 수가 불어나 미국 중남부의 농업을 황폐화시킬 기세였다. 뉴스쇼에 나온 이메리 의장은 네카팡이 여행비둘기를 되살릴 때 실수로 로키산메뚜기까지 복원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웃음을 터뜨렸다. “수준 낮은 음모론이죠. 기술적으로 절대 불가능합니다. 로키산메뚜기는 소규모로 어딘가에 살아 있었던 거예요. 실러캔스처럼요. 그와 별개로 지금 환경 재앙인 건 사실이니까, 수를 써야겠죠.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제대로 멸종시켜 버리는 것도 괜찮다 생각합니다. 언제든 되살리고 싶을 때 되살릴 수 있으니까요. 미국 농무부와 논의 중입니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