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포스트잇] [37] 뇌과학과 인간
뇌과학 전성시대다. ‘대중화된 뇌과학’ 콘텐츠들이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홍수를 이룬다. 사람에게 도움이 되니 그럴 것이다. 하지만 훌륭한 것에도 맹점(盲點)은 있는 법. 뇌과학의 성황(盛況) 속에서 전파자와 수용자 공히 주의할 점이 있다면 성찰을 마다할 까닭이 없다.
타이레놀을 먹으면 (뇌에 의해) 몸만 진통되는 게 아니라 실연의 아픔(마음)도 진정되는 효과가 있다는 실험 결과에 ‘인간이 고작 이런 존재인가?’ 하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는 고백은 인간의 주체성 부정(deny)의 순한 맛 입문이다. 일단, 뇌과학은 극단적이다 못해 ‘완전한(complete)’ 유물론이다. 사람은 영혼과 육체의 결합인 자기 자신(one’s own self)이 아니라, 뇌라는 물건이 조종하는 기계적 고깃덩어리일 뿐이라는 팩트는 사람을 은근슬쩍 살벌한 허무주의로 이끈다.
예컨대 뇌과학에 정통한 신경과 전문의를 하나 알고 있는데, 진리를 터득한 자가 아니라 의미를 잃은 사람처럼 보이니 안타깝다. 뇌과학으로의 일방적인 심취의 결과가 전부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런 위험성도 있다는 얘기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신을 그렇게 파악한 사람은 모든 생명체들 역시 그런 식으로 바라보게 돼 있다. 물론 뇌과학의 대중적 전파자 대부분은 뇌의 작동 원리를 잘 공부해서 자기 뇌를 스스로 이용해 자신을 좋은 방향으로 컨트롤하라는 취지를 내세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균형 감각’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와 경향이 부지불식 간에 있을 수 있다는 경고는 눈에 띄지 않는다.
뇌과학은 이제 과학을 넘어선 사조(思潮)가 돼버렸고, 철학적으로는 유물론을 기반한 ‘구조주의’의 최신판이자 끝판왕이다.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알튀세르는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아내를 목 졸라 죽이고 감금 상태에서 삶을 마감했다. ‘나’라는 것은 허상이고 기실 뇌를 움직이는 작용과 반작용만 있을지라도, 인간이 유전자를 운반하는 껍데기에 불과할지라도, 우리는 그 과학적 팩트를 유익하게 사용할 뿐 그것의 노예가 되지 않는 관점을 사수해야 한다.
내가 내 뇌의 주인이지, 뇌가 나라는 ‘없음’의 주인이 아니다. 이는 우리가 실은 4차원의 세계 속에 존재하고 있으되 3차원적인 감각으로 살아가야 광인(狂人)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4차원은 과학과 지식이지, 삶의 규칙이 돼서는 안 된다. 사실만큼 중요한 게 ‘태도’다. 헛똑똑 미치광이가 많아질수록 사회는 번드르르한 정신 병동이 되어간다. 사람과 쥐는 유전적으로 88% 비슷하다. 닭은 65%. 초파리는 45%. 회충은 38%. 포도는 24%. 빵의 효모는 18% 흡사하다.
그렇다고 인간이 저들과 마찬가지인가? 요즘 미국에서는 사람이 개 고양이와도 결혼하는 걸 합법화하자는 운동이 있다지만, 아무리 과학이 인간의 모든 것들이 뇌에 있다고 말해도, 우리는 마음과 영혼이 가슴에 있다고 믿으며 사랑하고 이별해야 한다. 그렇게 살다가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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