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52] 천재는 외롭다
화가이자 수필가 천경자(千鏡子·1924~2015)는 1979년 4월부터 7월까지 매주 조선일보에 인도와 중남미를 두루 여행하며 남긴 그림과 기행문을 기고했다. ‘원색 기행’이라는 제목답게 지면에는 낯선 풍물을 호방하게 담은 천경자의 그림이 큰 컬러 화보로 실렸고, 화가의 글은 그림만큼이나 다채롭고 감각적인 묘사로 가득했다.
첫 여행지는 인도 뉴델리. 뉴델리에서 처음 방문한 곳이 바로 동물원이었다. 그는 ‘화려한 새들과 백호, 힉힉거리는 표범을 바라보면 속이 후련해졌다’고 썼다. 천경자는 연보랏빛 화면 위에 온갖 동물을 자유롭게 그려 넣었는데, 그 형태를 단순화하면서도 각각의 특성을 살렸고, 낯선 수풀과 어우러진 원색의 향연이 머나먼 인도 땅의 이국적 정서를 생생히 전달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흑표범과 악어, 큰 물새의 눈동자다. 머나먼 타국에서 날아와 경탄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화가를 알아볼 리 없는 동물의 선명하지만 무심한 눈동자에 의외로 천경자의 외로움이 담겼다.
긴 여행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화가는 ‘재를 뿌려도 가슴속의 용광로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꺼지질 않는다’고 했다. 미인도와 자화상이 워낙 잘 알려진 탓에 천경자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속박이 많았던 여성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세상 만물의 근원이 궁금하고 그 형상과 색채 뒷면에 깊숙이 자리 잡은 영혼의 밑바닥까지 모두 헤집어 들여다보아야 원이 풀리는 탐구욕 가득한 예술가 천경자에게는 설사 남자로 태어났어도 한반도가 좁았을 것이다. 올해가 천경자 탄생 100주년이다. 시대를 너무 앞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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