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윤리 준수” 지침서 쓴 의사들, 진료순위-태도-보수 등 상세 조언[설혜심의 매너·에티켓의 역사]
최초로 잘 구현한 직업군이 의사
‘의학 윤리’ 등 에티켓 저서들 등장
“공감-공정의 조언자 역할 중요”… 진료 외 옷차림-말투까지 안내
“의사에게는 사근사근한 매너와 말쑥함, 그리고 감미로운 목소리가 큰 도움이 된다.”
1857년에 출간된 ‘직업 선택(The Choice of Profession)’이라는 책에 실린 구절이다.
영국 역사에서 전통적인 ‘전문직’은 성직자, 법조인, 의사, 군인을 포함한 관료를 일컫는다. 그런데 산업화가 불러온 사회경제적 변화는 전문직업군을 새롭게 정의하게 된다. 어떤 직업이든지 일정 정도의 조직화를 이루면 전문 직업인의 신분을 부여하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학자들은 19세기부터 시작된 ‘조직혁명(Organizational Revolution)’이 이 변화를 추동했다고 분석했다.
전문직업군으로 인정받으려면 우선 구성원을 대표하는 협회가 필요했고, 나아가 정형화된 교육과정, 자격시험, 법적으로 유효한 면허와 등록, 국가 전체를 포괄하는 중앙조직을 통한 통제 등이 필요했다. 마지막 필요조건이 바로 에티켓과 윤리강령이다. 전문직업군 윤리의 가장 큰 원칙은 동료들끼리 서로 명성을 해치지 않고 집단 전체의 명예를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전문직업화 과정을 최초로, 그리고 가장 잘 구현한 직업군이 의사 집단이었다.
의사 집단의 전문가 윤리는 여타 직업군보다 훨씬 더 전통적인 예법과 유사했다. 의료상 발생하는 위법행위가 주로 개인의 도덕적 결함에서 비롯한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따라서 1837년에 발행된 ‘의학 윤리(Medical Science and Ethicks)’가 18세기 예법서와 그 내용이 흡사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도시화가 진행되고 의료시장이 팽창하면서 의사 에티켓에 특화한 저서가 다수 등장했다. 특히 ‘의료 에티켓(Medical Etiquette)’은 당시 영국 의료계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낸 것으로, 원래 주치의 출타로 대신 불려 간 의사의 합당한 보수 산정, 진료비를 외상으로 달아 두는 관행에 대한 비판, 처방전이나 의사 자격증 등 의사의 서명이 필요한 서류 발급에 마땅히 책정되어야 할 수고비 등 의사의 금전적 보수에 관한 내용 일색이다.
당시 사회에서 의사끼리는 상호 무료로 진료하는 일이 일반적이었는데, 의사의 가족들까지 혜택을 누리곤 해서 종종 문제가 되었다. 저자는 이 관행에 극렬하게 반대하며 같은 직업군에 속한 ‘형제’라는 이유로 공짜로 치료받을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의료 에티켓’을 관통하는 다른 주제는 진료의 우선순위였다. 한 명의 환자를 치료하는 데 여러 명의 의사가 개입했을 경우 주도권 및 진료비 분배에 관한 문제이며, 환자가 심각한 질병에 걸렸을 때 오랫동안 자신을 돌봐 온 주치의와 명망 높은 의사 중 누구에게 진료를 맡길 것인가 등이 심각한 고민거리였다. 이런 문제는 의사의 전문성뿐만 아니라 인간적 의리가 개입된 영역이어서 결정이 더욱 어려웠다. 저자는 의사 선택에서 의견이 엇갈릴 때 온전히 환자의 본능에 따르도록 내버려 두라고 조언한다.
의사의 에티켓에는 진료의 영역 이외에도 태도, 옷차림, 말투 등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졌다. ‘직업 선택’은 “의사에게는 위엄 있는 행동거지가 필수다”라고 규정하면서 이를 위해 “일반적으로 안경을 쓰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조언했다. 나이 들어 보이기 위해 수염을 기르는 일도 권장되었는데, 의사의 나이가 많을수록 환자들이 의사를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영국의 의료시장은 치열한 경쟁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많은 의사가 자신이 ‘잘나가는’ 의사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느라 열성이었다. 병원 앞에 수행원이 딸린 멋진 마차를 세워 두는 일은 아주 효과적인 홍보 수단이었다. 빚을 내서라도 병원 인테리어를 멋지게 꾸미고, 지체 높은 손님들을 초대해서 디너 파티를 여는 일도 중요했다. 실제로는 환자가 한 명도 없지만 자신을 기다리는 환자가 많은 것처럼 거리를 뛰어다니거나, 의사들끼리의 약속에 진료하다 온 척하며 일부러 늦게 나타나는 의사도 많았다.
‘의학적 조언자(The Medical Advisor·1825년)’는 일찍이 의사가 사사로운 이익을 따지지 않는 공정한 호의를 가진 조언자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정의 자체는 이미 당시 의사들이 개인적 이익 추구와 윤리적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 뿌리 깊은 딜레마는 국가의 섣부른 개입으로 쉽게 해소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설혜심의 매너·에티켓의 역사’ 연재가 종료됩니다. 그동안 성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설혜심 연세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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