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기후위기시대, 인공지능의 빛과 그림자
현재 수준에서 보면
기후변화 완화에 있어서
AI는 긍정보다 부정적 면이
좀 더 강하고
적응에 있어선 긍정적 면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상황은
과거 우리가 걸어왔던
방식과 유사한 것 같다
하지만 AI가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지금의 방식은
아닌 것 같다
기후변화 완화에 있어서
부정적 면 빠르게 극복할
방안이 필요하다
한 편의 영화 같던 뜨거운 여름이 지나갔다. 거리 풍경은 여전히 가을이라기에 어색하지만 그래도 시간은 겨울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력했던 이상기후를 경험하면서 기후가 변했다는 것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는 것 같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첫인사는 기후가 변했다는 얘기다. 지난주 한·일 기후변화 워크숍 참석차 일본 도쿄를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한국과 일본의 과학자는 누가 더 뜨거운 여름을 경험했는지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는 우스꽝스러운 촌극도 빚어졌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지금 전 세계를 지배하는 가장 뜨거운 키워드인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지금 세상에서 주목받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이다. 하나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고 나머지 하나는 더 갈구하는 대상이다. 그렇다면 과연 기후변화와 인공지능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대상인 것일까. 개인적으로 AI가 인류를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삶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기후위기 시대 AI는 우리를 위기에서 구원해줄 메시아가 될 수 있을까?
내 전공 분야는 기후변화이기에 나름대로 탄소 배출량을 산정한다든지 기후변화 리스크를 진단하는 것은 자신이 있다. AI도 연구에 열심히 활용하고 있어 어색한 키워드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AI가 지금처럼 유행을 타기 전에도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지구시스템을 커버하는 방대한 양의 자료(빅데이터) 처리를 위해 AI와 유사한 방법으로 이미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뭐 이 정도 수준에서 보면 AI가 나름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AI가 기후위기에 어떤 도움이 될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좀 더 과학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기후위기 시대에 어떤 도구가 인류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기후변화를 조금 더 느리게, 즉 완화시킬 수 있게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다든지,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기후변화 피해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줄이는 데 기여를 해야 한다. 그래서 AI가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어줄 수 있는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탄소를 줄이든지(기후변화 완화), 기후변화에 의한 피해를 줄일 수 있게(기후변화 적응)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현재 AI가 기후변화 완화를 위한 탄소배출에 어떤 이바지를 하는지 살펴보자. 이제는 꽤 많이 알려진 것처럼 AI와 전력 소비의 관계는 매우 선명하다. AI가 발달하고 확산하면서 전력 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AI는 “전기 먹는 하마”라고 불릴 만큼 막대한 양의 전기를 소비하고 있다. AI는 일반적으로 충분한 양의 질 좋은 데이터를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충분한 양의 데이터를 보관하는 데이터센터에도 전기가 필요하고 데이터를 가공할 때도 전기가 필요하며 AI에 데이터를 활용할 때도 전기가 필요하다.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AI로 인한 탄소배출량 되레 늘어
비교 대상은 아니지만 간단히 생각해보자. 만약 우리가 1년에 얼마나 많은 커피를 사 마셨을까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하면 불과 몇분 만에 피곤함을 느낄 것이다. 아마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 때면 훨씬 더 힘이 빠질 것이다. 바로 에너지를 많이 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계산을 하는 AI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우리가 AI를 활용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수급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탄소를 배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적어도 현재 상황은 그렇다.
앞에서 언급했던 데이터센터를 좀 더 살펴보면 AI 학습을 위한 CPU, GPU 등 연산장치(서버)가 구축되어야 하며 이를 운용하는 과정에 열을 식히기 위한 냉각장치 또한 필요하다. 우리 연구실에서 사용하는 아주 작은 연산장치도 에어컨이 없으면 가동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많은 사람이 함께 쓰는 챗GPT 같은 범용 장치는 아마 상상을 초월하는 냉각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엄청난 양의 에너지 소비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국제에너지기구(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데이터센터와 AI 분야의 전기 소비는 약 460Twh이고 이는 전 세계 전력 소비의 약 2%에 해당하며 2026년에는 1050Twh까지 약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늘어나는 전력 수급 문제를 무탄소 에너지로 대체하지 못하면 이 전망은 결국 지금보다 탄소배출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뜻이기에 기후변화 완화에는 정확히 반하는 방향이다.
전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들의 상황을 봐도 마찬가지다. 구글 같은 경우 AI를 본격적으로 사업에 활용하면서 2023년 기준 탄소 배출량이 4년 전보다 약 48%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보고했다. 2021년 구글은 2030년에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모든 공정을 무탄소 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야심찬 선언을 했지만, AI와 함께라면 목표를 달성할 수 없어보이는 상황이다. 비단 구글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 또한 AI를 위한 데이터센터 확충으로 탄소 배출량이 늘어났으며 국내 기업 네이버 또한 생성형 AI 개발에 따라 탄소 배출량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3년 전인 2021년 탄소 감축에 있어서 기존 석유화학, 철강, 그리고 제조 분야처럼 당장 탄소배출을 줄이기 어려운 분야보다 더 빠르게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더 나아가 탄소 상쇄까지 선언했던 빅테크 기업들이 AI와 함께 탄소 배출량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AI가 기후변화 완화 측면에서 분명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하다. 다만 그래도 희망적인 부분은 몇몇 AI 기술들이 에너지 효율화, 공정개선, 에너지 수요 예측, 저탄소 소재 개발 등에 활용되어 배출량 저감에 이바지하고 있고, 많은 빅테크 기업들 또한 에너지 효율을 항상시켜서 간접적으로 배출량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확보를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다.
AI, 기후변화 예측 불확실성 줄여줘
기후변화 적응 분야에서의 AI는 완화보다는 조금 희망적인 상황이다. 기후변화의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예측 불확실성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내일 닥칠 이상기후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면 오늘 대응할 수 있기에 내일 맞이할 피해를 조금 더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확한 예측의 중요성인데 기후변화 관점에서 내일, 한 달, 1년, 10년, 100년 뒤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늘 강조하지만, 기후변화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다 흔들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AI가 기후변화 예측의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예측 불가능하다고 했던 폭염, 폭우, 폭설, 폭풍에 대한 시공간 변화의 예측 정밀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모니터링 분야에서도 AI는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기후변화 현상 및 피해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매우 정밀한 수준의 관측이 필요하지만 지금 당장 지구 모든 곳을 샅샅이 살필 수 없기에 인공위성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위성 또한 실시간으로 모든 곳을 볼 수 없기에 한계가 있다. 그런데 AI는 이질적인 여러 위성을 한 번에 묶어서 새로운 정보를 산출하는 역할을 하기에 새로운 위성을 발사하는 것에 비해 탄소배출 저감이나 경제성에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수준에서 보면 탄소중립 및 기후변화 완화에 있어서 AI는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좀 더 강하고 적응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면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상황은 과거 우리가 걸어왔던 방식과 유사한 것 같다. 인류는 경제성장 및 산업화를 위해 막대한 에너지를 쓰고 탄소를 배출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기후변화를 맞이한 것이다. 지금 AI가 그런 상황이다. 하지만 AI가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지금의 방식은 아닌 것 같다. 기후변화 완화에 있어서의 부정적인 면을 빠르게 극복할 방안이 필요하다. 인류에게 득이 되는 기술은 시대의 흐름에 반드시 맞춰야 한다. AI가 우리의 동반자가 되기 위해서는 AI가 탄소와 함께하지 않는 방법이 무엇인지 인간지능으로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빗속에 모인 시민들···‘윤석열 퇴진·김건희 특검’ 촉구 대규모 집회
- 트럼프에 올라탄 머스크의 ‘우주 질주’…인류에게 약일까 독일까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사라진 돌잔치 대신인가?…‘젠더리빌’ 파티 유행
- “나도 있다”…‘이재명 대 한동훈’ 구도 흔드는 경쟁자들
- 제주 제2공항 수천 필지 들여다보니…짙게 드리워진 투기의 그림자
- 말로는 탈북자 위한다며…‘북 가족 송금’은 수사해놓고 왜 나 몰라라
- 경기 안산 6층 상가 건물서 화재…모텔 투숙객 등 52명 구조
- [산업이지] 한국에서 이런 게임이? 지스타에서 읽은 트렌드
- [주간경향이 만난 초선] (10)“이재명 방탄? 민주당은 항상 민생이 최우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