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이토록 분리된 세계
두 달간 두 개의 세계를 살았다. 정치부 일과 창간기획 ‘쓰레기 오비추어리’ 시리즈 준비를 병행했다. 생산부터 폐기까지 지구 전역을 돌며 탄소발자국을 남기는 물건들의 생애를 다루는데, 기획기사와 전시회를 함께 준비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갈등을 짚다가 헌 옷 수출선 항로를 확인하고, 한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회동 결과를 기다리며 전시작을 만드는 일상이었다.
당초 기대와 달리 두 업무 사이에는 어떤 접점도 없었다. 완벽하게 분리된 두 개의 세계 같았다. 두 달간 기후위기 등 환경이슈가 핵심 정치의제로 다뤄진 날을 떠올리기 어렵다. 폭염 이유를 설명할 때 살짝, 한국이 직면한 복합적인 위기를 나열할 때 살짝 언급되는 식이었다.
윤 대통령이 이 기간 주재한 세 번의 국무회의 모두발언에 이 주제는 등장하지 않았다. 내년도 예산안의 핵심 과제를 설명한 8월27일 회의도 마찬가지였다. 거대 양당 지도부의 공식 발언에서도 기후위기 관련 발언은 희귀했다. 지난달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가 각각 국회 ‘기후위기 대응 특위’와 ‘기후특위’ 신설을 제안한 정도다. 40일이 지났지만 특위 설치에 합의했다는 소식은 없다.
드물게 나온 말들에 담긴 위기의식은 대단하다. 그에 따르면 기후위기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국가적 핵심과제”(추 원내대표)이고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오래지 않아 소멸할 것”(박 원내대표)이다. 그렇다고 여야 협상의 주된 의제가 되거나, 논쟁거리라도 되거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정도의 ‘전향적 법안’이 추진되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 지난달 말 국회에는 ‘파국적 기후재앙을 막기 위한 전면적 사회 대전환 촉구 결의안’이 제출됐다. 여기에 담긴 “재앙에 대비하고 생존의 길을 찾는 것은 정치의 역할이다. 우리 정치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이 아우성치고 있다”는 현실인식은 정확하다.
정치권 밖 세계에선 작은 진전이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8월 말 탄소중립기본법이 “기후위기라는 위험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후로는 법을 보완하는 국회의 시간이 열려야 하지만, 국회 시계는 아직 움직이는 것 같지 않다.
왜 이런가. 기후위기 대응을 강조해 온 한 의원에게 물었다. “22대 국회를 열 때 많은 의원들이 기후 문제에 관심을 보여서 ‘외롭지 않겠구나’ 했는데 지금은 ‘올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겠구나’ 한다. 전반적으로 정치 상황이 이견을 조정해 앞으로 나아가는 분위기가 아니다.” 쟁점 현안으로 다투다가 법안들을 우르르 통과시킬 때 끼워서라도 관련 입법들이 이뤄졌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공론화 포기를 감당해야 하는 고육지책 아이디어다.
결국 두 세계는 연결될 수 있을까. 아니, 이 문장은 틀렸다. 두 세계는 마땅히 연결되어야 한다. ‘당신부터 뭐라도 더 하지 그랬냐’라는 비판을 스스로도 피할 길이 없다는 생각에 우선 이 글을 쓴다.
유정인 정치부 차장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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