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인공지능‘의’ 연구를 기다리며

허남영 국립부산과학관 전시교육본부장 2024. 10. 1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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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영 국립부산과학관 전시교육본부장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표현은 미국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링컨 대통령이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사용한 후로 널리 알려졌다. 국민과 정부 대신 다른 표현을 넣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교육에서 학생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한다면, ‘학생의, 학생에 의한, 학생을 위한 교육’과 같이 학생과 교육을 짝지을 수 있겠다. 회사의 지향에 따라 고객과 상품, 또는 환경과 제품을 넣어 표현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과 연구는 어떨까?

개인적으로 필자의 지난 한 주는 온통 노벨상으로 가득 찼다. 해마다 이맘때면 노벨상 수상자들이 발표되는데, 그 내용이 일반인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수상자들도 대중적 인지도가 없는 낯선 사람들인 데다가, 솔직히 우리나라를 빼고 이뤄지는 ‘저들만의 잔치’ 같아서 일부러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 노벨물리학상이 발표되자 “엇 저분은?”이란 반응이 나오는 비교적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인공지능의 위험과 규제 필요성을 주장하며 구글에 맞선 제프리 힌턴 교수였다. 데이터에서 자동으로 특성을 찾고 적용하는 기계학습을 가능하게 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노벨물리학상을 물리학 전공자가 아니라 인공지능 개발에 기여한 분이 받다니, 융합의 시대임을 실감 나게 한다. 또 다른 수상자는 존 홉필드 교수로, 데이터에서 패턴을 기억하고 재구성하는 연합기억을 창안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렇게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인공지능‘을 위한’ 연구에 돌아갔다.

이어 발표된 노벨화학상은 더 놀라웠다. 수상자 얼굴이 더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는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2016년 우리의 바둑 영웅 이세돌에게 4-1로 이긴 알파고를 만든 인물이다. 허사비스가 노벨화학상을 받게 된 공로는 무엇일까? 코로나와 같은 질병을 치료하거나 생명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백질의 구조를 파악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은 질병의 피해를 입게 된다. 허사비스는 단백질의 구조를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하는 인공지능인 알파폴드2를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올해 노벨화학상은 인공지능‘에 의한’ 연구에 수여됐다.

여담으로 지금까지는 노벨상을 받으려면 학문적 성취도 중요하지만 오래 사는 것이 제1조건이라고 할 정도로 수상자들이 고령이었다. 지난 10년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29명의 평균 나이는 73.6세였고 노벨화학상 수상자 28명의 나이 평균도 68세였다. 즉 평생 이룬 성취에 대한 칭송의 의미가 강했다.

그런데 올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존 점퍼는 39세에 불과하다. 이는 노벨상으로 대표되는 학문 연구가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급변하는 기술을 접목하면 평생을 들이지 않아도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하고, 학문적 기여가 높은 연구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구의 주체가 인공지능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물리학 연구를 수행하는 인공지능이 개발돼 우주의 비밀을 파헤치고, 우수한 성취를 이룬다면 노벨상은 누구에게 줘야 하는가? 불과 2년 전,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발표된 후, 사람들이 이를 활용해 음악을 만들고 소설을 쓰면서 저작권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이제 그 논의가 과학 연구의 영역으로 확대되는 시점이 온 것이다.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을 하고 과학자들은 어떤 역량을 키워야 할까? 앞으로 달라질 연구 환경에 어떻게 적응할지 고민하던 그 때,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번역 없이 원문 그대로 읽을 수 있다는 우스개 섞인 축하를 주고받는 가운데, 노벨상을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이 밝힌 수상의 이유가 눈에 띄었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력한 시적 산문.” 나약한 한 인간이 시대를 마주하고 살아내는 방식이 세계인의 공감을 받은 것이리라.


앞으로도 인간은 인공지능을 위해, 인공지능에 의해 연구하고, 나아가 인공지능이 연구해 수학과 물리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의 난제를 풀고, 미래 사회가 직면한 문제 해결에 필요한 이론적 성취를 이루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인간은 노벨상을 누구에게 줄지 고민하기보다,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면서 인공지능의 성과를 잘 활용하면 되지 않을까?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그런 메시지를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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