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가 된 ‘홈리스’…“인생도 축구처럼, 지더라도 끝까지”
홈리스월드컵 대한민국 주장 김성준씨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이제는 괜찮아요. 있어봤자 뭐. 다시 하면 되죠.”
지난달 28일 폐막한 2024 홈리스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주장으로 뛰었던 김성준(26)씨에게 싹튼 변화의 씨앗이다. 자립준비청년인 성준씨는 지적장애인, 위기청소년, 난민 신청자 등 총 8명과 함께 이번 대회에 출전했다. 풋살처럼 4:4 매치로 진행되는 홈리스월드컵은 2003년 처음 시작한 국제대회로, 노숙인 이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팀을 이뤄 매년 50여개 국가가 참가한다. 남다른 성장통을 겪었던 성준씨는 힘든 순간을 맞닥뜨리면 힘없이 늘어져 우울하기만 했지만, 홈리스 월드컵을 통해 인생이라는 경기에서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웠다. 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던 것처럼,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걸 깨달았다.
성준씨는 인생의 첫 기억이 생생하다. 다섯 살이었다. 미키마우스 가방을 메고 아동양육시설에 들어간 날, 시설 형들에게 이유도 없이 폭행을 당했다. 눈 뜨는 순간부터 눈 감는 순간까지 맞았다. “앞으로 가”, “왼손으로 때려” 형들은 친구끼리 싸움을 붙이기도 했다. 어린 성준은 체스의 말처럼 형들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반항하면 더 큰 폭력으로 돌아왔다. 머리 속에는 ‘어떻게 하면 안 맞을 수 있을까’ 이 생각만 가득했고, 나날이 피폐해졌다.
지옥이었던 시설 생활의 유일한 탈출구는 시설 선생님이었다. 고령이라 ‘할머니’라고 불렀지만, 성준씨에게는 엄마이자 곧 집이었다. 할머니는 성준씨가 형들에게 맞지 않도록 집에 데려가 재우곤 했다. 그 시간이 성준씨에게는 숨을 쉬는 순간이었다.
할머니의 존재가 컸던 만큼, 빈자리도 컸다. 6년 전 성인이 돼 시설에서 나온 뒤에도 할머니와 매일 연락했는데, 어느 순간 답이 없었다. 문자함에 발신 기록만 쌓인지 한 달이 지났을 즈음 문자 하나가 왔다. ‘할머니 돌아가셨습니다.’
갑작스럽게 맞이한 할머니의 죽음은 성준씨가 감당하기 어려웠다. 어두운 방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근 뒤 1년을 넘게 나가지 않았다. “눈 뜨고 눈 감고. 이게 전부였어요.”
어두운 방 안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한 건 성준씨가 축구를 시작하면서다. 시설에서 같이 생활했던 동생의 제안으로 2019년에 만사소년FC 축구단에 가입해 공을 차기 시작했다. 만사소년FC는 천종호 부산지법 판사가 위기청소년들을 위해 만든 축구팀이다. 성준씨를 이 팀으로 데려온 시설 동생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홈리스월드컵 국가대표가 됐는데, 이전과 달리 인성적으로 부쩍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이 멋져 보이면서도 부러웠던 성준씨는 2024년 홈리스월드컵 선수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선수로 신청했다.
‘삐익’ 첫 경기 상대는 독일이었다. 난민 신청자로 한국팀으로 참가한 포시 완지가 선제골을 터뜨리자 연이어 골이 쏟아졌다. 결과는 한국팀의 4:0 승리. 성준씨도 한 골을 보탰다. 첫 경기를 승리로 시작해 자신감에 차올랐지만, 이내 무너졌다. 0:10, 0:7, 1:9, 1:7. 대패의 연속이었다. 팀 분위기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성준씨도 실망감이 커 고개를 떨궜다. 한국팀 감독을 맡은 이한별 감독이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지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플레이를 하면 된다. 그러면 패배든 승리든 경기 이후에 뭐든 남을 거다.” 성준씨는 이 말이 가슴에 남았다. 지고 있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자고 다짐했다. 경기장에 들어서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한국팀은 이후에도 몇 번이나 패배했지만, 성준씨와 선수들의 마음은 달랐다. “졌지만 잘 싸웠다고 생각해요. 우리만의 플레이를 했거든요.” 한국팀은 4승7패를 기록하며 36개 남성팀 참가국 중 27위로 순위를 마무리했다. 1위는 남녀 모두 멕시코가 차지했다.
성준씨는 대회 이후 대학으로 돌아가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다. 어렸을 적 할머니의 품에서 숨을 쉬었던 것처럼 아동양육시설에서 지내는 친구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기 위해서다.
홈리스월드컵 선수 김성준씨의 이야기를 통해 주거빈곤 청년의 분투와 재기를 다룬 한겨레 특집 다큐멘터리 ‘THE CHANCE’(더 찬스: 기회)는 유튜브 채널 ‘한겨레 뉴스룸’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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