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120> 고려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가위

박미욱 정관박물관장 2024. 10. 14.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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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는 미술시간 손에 쥐는 문구용부터 정원용 이발용 의료용까지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도구다.

고려 시대에 가위는 남녀 모두가 사용했겠지만, 무덤에서 함께 출토되는 유물로 미루어 보면 바느질로 의복을 장만하고 화장을 했던 여성이 더 많이 썼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 시대 무덤 속 가위를 보면 손때 묻은 실생활 도구로 사용되다가 피장자와 함께 부장돼 내세에서도 현세와 같은 삶을 누리길 염원하는 고려 사람의 마음이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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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여성 무덤서 출토…평소 쓰던 물건 함께 묻은 듯

가위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가위는 미술시간 손에 쥐는 문구용부터 정원용 이발용 의료용까지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도구다. 외국인이 감탄한다는, 고기나 냉면을 자르는 주방용 가위부터 용도보다 맛있는 소리로 기억되는 엿장수 가위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창의성이 엿보이는 가위도 있다. 문득 이런 가위를 언제부터 사용했고, 예전엔 어떤 용도로 썼는지 궁금해진다.

부산 기장 용수리 유적 출토 청동가위. 정관박물관 소장


삼국 시대엔 고분에서 가위가 출토된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건물이나 목탑 심초석 아래 매납되거나 사리장엄구에 포함됐다. 경주 안압지에선 90여 점 가위가 출토됐는데, 그중 납제 90점은 형태만 갖추었을 뿐 비실용적이어서 고대 사회에서는 제사 신앙의 주술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큰 건물지나 탑 사리장엄구 내 가위는 진단구(鎭壇具·나쁜 기운이 근접하지 못하게 땅에 묻은 공양품)로 쓰인 것은 아닐까.

기장 방곡리 유적에서 출토된 철제가위. 정관박물관 소장


통일신라시대 무덤에서도 가위는 확인되지 않다가 고려 시대 이르러서야 무덤에서 가위가 자주 발견된다. 고려 시대 장례 풍습은 많은 양의 유물을 부장하진 않았고, 의례용 부장품보다 피장자(被葬者)가 실생활에서 쓰던 물건을 무덤 안에 넣은 경우가 많다. 자기와 청동으로 만든 식기류, 청동숟가락, 동경, 장신구 등 피장자가 일상에서 쓰던 생활용품이었다.

고려 시대 무덤 속 대표적인 생활유물이 바로 가위다. 처음엔 고정못이 없는 8자형이 대세를 이루다가 뒤에 고정못이 있는 X자형으로 변화하면서 가위의 실용성도 높아졌다. 동경이나 빗 분합 유병 등과 함께 출토되는 경우엔 미용·화장도구로, 바늘과 함께 나오는 경우엔 재단·재봉용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 시대에 가위는 남녀 모두가 사용했겠지만, 무덤에서 함께 출토되는 유물로 미루어 보면 바느질로 의복을 장만하고 화장을 했던 여성이 더 많이 썼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고려 시대 무덤 중 인골을 통해 성별이 남성으로 확인된 무덤에서는 가위가 출토되지 않았고, 여성으로 확인된 무덤에서는 동경·빗·장신구와 함께 가위가 종종 출토되고 있다. 고려 시대 무덤 속 가위를 보면 손때 묻은 실생활 도구로 사용되다가 피장자와 함께 부장돼 내세에서도 현세와 같은 삶을 누리길 염원하는 고려 사람의 마음이 읽힌다.

지난달 3일 개막한 정관박물관 특별기획전 ‘이제 우리의 일기를 쓰겠소’에선 무덤에서 출토된 가위를 만날 수 있다. 이 전시는 개관 10년 되는 정관박물관의 자취를 담아낸 전시로, 정관신도시 개발을 위해 3년간 진행되었던 발굴 조사 과정과 박물관 건립에 관한 이야기, 10년간 박물관을 꾸려온 노력, 주민과 함께 성장해 온 정관박물관 일기이다. 정관박물관에 오셔서 한 줄의 가을 일기를 써 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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