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영진위원 징계 강행…‘독립성 흔들기’ 논란

김은형 기자 2024. 10. 14.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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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국감 지적 뒤
문체부 감사…이전 정권 임명 위원 4명 징계 시도
영화진흥위원회. 한겨레 자료사진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일부 위원들이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이해충돌방지법)을 위반했다며 징계를 밀어붙여 논란이 되고 있다. 오는 17일 영진위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서둘러 징계를 내리기 위해 절차적 타당성 없이 무리수를 둔다는 비판이 나온다.

발단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영진위 국감에서 배현진 국민의힘 위원은 일부 영진위 위원이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행위를 했다며 문화체육관광부 감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 의원은 위원들이 자신이 속한 영화 관련 단체에 예산을 교부하거나, 영진위 지원 예산에서 인건비를 자체 수령해가고, 영진위 제작 지원 사업에 공동 제작자로 들어가 인건비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이후 문체부는 감사를 벌여 지난 6월 위원 3명에 대해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을 통보했다. 영진위는 자체 감사를 통해 또 다른 위원 1명도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으로 판단했다. 이들 4명은 모두 2022년 초 문재인 정부 때 영화계 추천을 받아 문체부 장관이 임명한 인사들이다.

이 가운데 영화발전기금 예산안 심의·의결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속한 단체의 예산을 교부하거나 인건비를 수령했다고 지적받은 이들은 영진위원 임명 전부터 영진위와 공동 사업을 하는 단체장으로 활동해왔다. 이런 활동 사항을 임명 전 이력서에 적어 제출했고, 이후 영진위 사무국의 법률 검토 안내에 따라 위원 업무를 수행해왔는데도 이를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으로 판단한 문체부 감사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공동 제작자로 이름을 올렸던 위원은 사무국으로부터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소지에 대한 공지를 들은 직후인 2023년 초 공동 제작 계약을 해지했다고 영진위에 보고했다.

영진위 사무국이 위원들에게 공식적으로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 제도 세부 운영 기준을 알린 건 법 시행 1년이 넘은 지난해 8월이며, 9명 위원 대상 이해충돌방지 교육은 올 3월에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영진위 사무국은 한상준 신임 위원장 취임 직후인 지난 7월 13차 정기회의에서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 위반 관련 경과 및 징계 처분 절차’를 보고 안건으로 올렸다. 공개된 회의록을 보면, 위원들은 이해충돌방지법 시행 당시 해당 내용이 제대로 공지되지 않았고, 문체부 감사 결과 뒤 재심 요청이나 관련 정보 공개 청구 등에 대해 사무국이 업무를 제때 처리하지 않아 해당 위원들이 피해를 본 점을 지적했다.

그러자 사무국은 지난 8월 14차 정기회의 때 위원 징계 규정을 추가하는 ‘9인 위원회 운영에 관한 규정 개정’을 심의·의결 안건으로 올렸다. 회의록을 보면, 위원장을 제외한 참석 위원 전원이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이나 영진위 정관과 상충할 수 있는 규정안 개정에 문제를 제기해 안건이 보류됐다. 사무국은 9월 15차 정기회의에 다시 이 안건을 올렸지만, 부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무국은 15일 임시회의를 열기로 하고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위원 징계 기준’을 다시 안건으로 올린 상태다.

8월 정기회의 회의록을 보면, 위원들은 영비법에 따라 자율성과 직무 독립성을 보장받은 영진위원을 징계하기 위해 하부 규정을 개정하는 건 상위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감사 대상이 아닌 한 위원은 “영비법에 의하면 영진위원 면직에 관한 사항은 정관에 넣도록 돼 있다”며 “징계에 관한 사항도 정관에 명기되거나 영비법상으로 다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진위원은 비상임이기 때문에 감봉, 견책, 경고 등 보통 정규 직원에게 적용하는 징계 사항을 적용하는 것도 불가능해 징계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영화계에서는 내년 1월이면 임기가 종료되는 이들 위원에 대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징계를 강행하려는 것은 영진위의 독립성을 흔들기 위한 의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영진위 소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한 영화계 인사는 “이해충돌방지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넘었는데 진작 정비했어야 하는 사항들을 사무국이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영진위원들이 부당한 징계 위기에 놓이게 된 상황”이라며 “임명권자인 문체부 장관에게 해임 권한이 있음에도 주먹구구식 징계 규정이나 기준을 만들며 영진위 사무국과 소수 위원 의견만으로 밀어붙이려는 건 민간자율기구인 영진위의 독립성 유지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우려했다.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체부 장관이 위원들을 임명한 것처럼 해임 역시 할 수 있음에도 영진위가 영비법과 정관에도 없는 위원 징계를 밀어붙이고 있다”며 “위원 징계의 목적이 망신 주기 또는 찍어내기에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또 “국민들은 영진위가 2018년 블랙리스트 실행 기관으로 전락한 데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을 기억한다”며 “현재 윤석열 정부의 영진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상황 역시 그때의 블랙리스트와 다를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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