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깎인 국가 필수접종 백신 사업...국회서 증액 가능할까
내년도 국가필수예방접종(NIP) 사업 예산이 큰 폭으로 깎이면서 대통령 공약 사항인 대상포진 백신을 비롯한 필수접종 대상 확대가 좌초될 위기에 빠졌다.
최근 국회 상임위원회 등은 국정감사에서 질병청의 예산 삭감을 지적하며 예산 증액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다음달 열리는 국회 예산심의에서 필수접종 사업 예산이 증액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질병관리청이 최근 제출한 2025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국가필수예방접종 예산은 6018억3100만원으로 편성됐다. 올해 약 8010억2200만원 예산보다 약 24.9% 감소한 금액이다.
질병청은 올해 1월 우선순위를 정한 '국가예방접종 도입을 위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대상 확대를 위한 밑그림을 그렸다. 도입 우선순위는 관련 전문학회 등으로부터 도입 필요 백신에 대한 수요조사 및 전문가 검토를 통해 후보 백신을 선정하고, 백신별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전문가들이 두 차례 평가해 최종 7개 감염병, 15개 항목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했다.
이에 따르면, ▲1순위 인플루엔자 백신 확대(19세~64세 매년 1회) ▲2순위 고령층 폐렴구균 백신 도입((PCV13, 65세 이상) ▲3순위 HPV 9가 백신 도입 및 대상 확대(12세 여아) ▲4순위 고령층(70세 이상) 대상포진 백신 도입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통령 공약이자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대상 확대'와 '고령층(65세 이상) 대상포진 백신 도입'의 경우 질병 부담과 비용 효과 측면에서 도입에 타당성을 입증했다.
그 뒤를 ▲5순위 인플루엔자 4가 고면역원성 백신(65세 이상) ▲6순위 HPV 9가 백신(12세 남아 및 여아) ▲7순위 인플루엔자 4가 백신(50-64세) ▲8순위 A형간염 백신(19-49세) ▲9순위 인플루엔자 4가 백신(13-18세) ▲10순위 수두백신(4-6세 대상 2차 접종) ▲11순위 A형간염 백신(13-18세 대상 접종) ▲12순위 Tdap/Td 백신(20세 이상, 매 10년마다) ▲13순위 대상포진 생백신/재조합 백신(70세 이상) ▲14순위 HPV 4가 백신(12세 남아) ▲15순위 대상포진 재조합 백신(70세 이상)이 차지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거치며 예산이 삭감되면서 1순위 인플루엔자 백신 확대도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올해 10월 7일부터 8일까지 진행된 국정감사에서도 의원들은 예산 삭감 문제를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은 "대상포진 백신 무료접종은 대통령 공약이었는데 예산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의 서영석 의원도 HPV 백신 접종 도입에 대해 "여·야 모두 공약했던 사항이라 잘 되는 줄 알았는데 내년도 질병청 예산을 보니 20% 넘게 삭감됐으며, 특히 국가예방접종예산도 24.9% 삭감된 상황"이라며 "(NIP 대상 확대를) 말로만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상임위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오는 11월 열리는 부처 예산 심사에서 국가필수예방접종 관련 예산을 증액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복지위 예산소위에 참석하는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증액을 위해 목소리를 낼 것이다. 다만 의원들 마다 확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필수접종 대상 백신은 다를 것"이라며 "이를 잘 조율해 정부안에서 얼마를 늘릴 수 있을지, 증액된다면 무엇을 확대 대상에 넣을지 머리를 맞댈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도 "예산이 수반돼야 필수 접종 대상 확대가 가능하니 증액에 같은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입법을 통한 지원도 뒤따르고 있다. 국민의힘 서명옥 의원은 지난 2일 대상포진을 국가 필수예방접종 대상에 포함하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제24조 제1항 제18호 신설)'을 발의했다. 시행은 2025년 1월 1일부터로 돼 있다. 11월 법안 심사가 예산 심사와 함께 이어지는 만큼, 입법을 통한 예산 증액을 압박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만, 변수는 상임위 다음 단계인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복지위에서 삭감하거나 증액한 부처 예산안들이 뒤집힌 경우가 종종 있었다.
국회 상임위, HPV 9가·대상포진 필수접종 도입에 총력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들은 HPV 9가 백신 도입과 고령층 대상포진 백신 도입에 집중하고 있다. 가격이 꽤 나가는 프리미엄 백신으로 분류되기는 해도, 예방효과를 통해 국민 치료비 부담 효과를 충분히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시절 공약인 것도 뗄 수 없는 이유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은 "자궁경부암과 두경부암 등의 증가 추세를 볼 때 현재 국가예방접종으로 지원되는 '서바릭스'와 '가다실 4가' 백신으로는 예방 효과가 충분치 않다는 점이 명확해졌다"며 "보다 넓은 예방 범위를 가진 가다실 9가 백신을 국가예방접종에 포함시킨다면 HPV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질병과 암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국민 치료비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도입을 강조한 대상포진 백신도 마찬가지다. 다만, 질병청의 도입 우선순위 목록에는 생백신이 먼저 올랐다. 사백신(유전자 재조합 백신)은 우선순위 측면에서 떨어져 있다. 가격에 있어서도 GSK의 대상포진 사백신 '싱그릭스'는 2회 접종시 40만원, SK바이오사이언스의 '스카이조스터'나 공급 중단 예정인 MSD의 '조스타박스'는 대체로 15만원대 내외이다.
이와 관련 국내외 전문학회에서는 사백신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대한감염학회에서 발표한 2023 가이드라인에서도 대상포진 백신 접종 시 예방효과 및 효과의 지속기간을 고려해 "ZVL(생백신)보다 RZV(사백신, 싱그릭스)를 우선하여 권고한다"고 명시했다. 호주 보건부의 경우도 2023년 11월 1일부터 NIP 포함 대상포진 예방백신이 싱그릭스로 대체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재원 기자 (jwl@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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