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감정 컨트롤타워’ 설치… “지지부진한 재판에 속도낸다”

안희정 손배 ‘의료감정’에만 2년
의료·건축 등 지정 전문가 참여
신속재판 기대… 2024년 수원고법 시범
2025년 상반기 전국 권역 운영 계획

법원이 재판 지연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의료·건설 등 감정절차를 개선하기 위한 통합 관리기구를 만든다. 개별 재판부가 진행하던 감정을 권역별로 관리하고 지정된 전문가를 참여시켜 감정절차의 신속성과 적정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이르면 11월 수원고법에 감정절차 관리 기구인 ‘감정관리센터’를 설치한다. 올해 수원고법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한 뒤 내년 상반기부터 전국 6개(서울·대전·대구·부산·광주·수원) 고등법원에 본격적으로 설치·운영할 예정이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뉴스1

법원의 감정은 재판 과정에서 특정 사실에 대한 판정이 필요할 때 관련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에게 진위나 가치 등을 법원에 보고하게 하는 증거조사 방법 중 하나다. 시가나 측량, 문서, 의료, 공사비 등이 주 감정 대상이다. 그러나 낮은 감정료 등으로 그간 감정기관에서 감정을 거부하거나 결과를 늦게 보내는 경우가 많아 사건 적체의 주요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성폭행 피해자인 김지은씨가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도 이 같은 의료감정 절차의 문제가 드러났다.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21년 9월 법원은 김씨의 피해사실 입증을 위해 신체감정을 의뢰했는데 이에 대한 회신을 받기까지 약 2년의 시간이 걸렸다. 신체감정은 대학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전문의에게 의뢰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운 데다 병원에서 감정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절차가 지연된 것이다.

건설 소송에서도 당사자끼리 감정 내용을 두고 다투는 경우가 많아 신속한 처리에 애를 먹고 있다. 건설전담부 판사로 일한 배지호 변호사는 “건설 소송에서는 상대방이 감정 결과를 납득하지 못해 보완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감정인들 간의 수준 차이를 줄이고 감정 부실화를 막는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행정처는 재판부별로 진행하던 감정절차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감정관리센터를 설치하기로 했다. 센터는 감정절차 전반을 관리하는 담당 판사와 개별 감정사건의 관리를 담당하는 각 분야 전문가인 감정관리위원으로 구성된다.

특히 전문가 가운데서 위촉된 감정관리위원은 개별 재판부의 지정에 따라 해당 사건에 참여해 감정 가부, 감정인 선임, 감정사항 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감정사건의 절차진행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센터는 우선 절차 진행에 특히 어려움이 많은 의료·건설분야를 대상으로 감정절차를 관리한다.

앞서 사법정책자문위원회는 지난 7월 전문가로 하여금 감정절차를 관리하도록 하고 감정결과가 제때 회신되도록 감정인과 소통하도록 하는 관리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의결했다. 이에 따라 행정처는 센터 설치를 위해 10일 전문심리위원 규칙 일부 개정 규칙안을 입법예고했다.

행정처는 “감정절차의 신속성뿐만 아니라 감정 결과의 적정성과 충실성도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