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팩트체크’를 부탁해 [시민편집인의 눈]
제정임 |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
지난달 10일 열린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 티브이 토론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진행자들이 현장에서 팩트체크(사실검증)를 하는 모습이었다. 에이비시(ABC)뉴스 앵커인 데이비드 뮤어와 린지 데이비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특유의 ‘아무 말 대잔치’를 할 때마다 즉시 개입했다. ‘이민자들이 주민의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었다’ ‘(낙태권과 관련해) 태어난 아기도 죽일 수 있는 지역이 있다’고 한 말이 사실무근임을 지적한 게 대표적이다. 뉴욕타임스를 포함한 주요 언론도 토론 중 실시간으로 수십건씩의 팩트체크 결과를 온라인에 올렸다. 유권자들이 엉터리 주장에 휩쓸리지 않고, 후보자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소셜미디어 등을 타고 허위조작 정보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시대에, ‘전통 언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가를 보여준 예라고 하겠다.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폐지냐, 유예냐’ 논란 중인 금융투자소득세는 국내 언론이 이런 팩트체크를 제대로 해줘야 할 사안 중 하나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을 늦게나마 증시에도 적용하기 위해 여야 정당이 합의해서 입법해놓고, 바로 그 당사자들이 ‘금투세 도입하면 한국 증시 박살 난다’고 호들갑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1400만 주식 투자자’가 결사반대한다는데, 금투세를 시행하면 정말 이들 모두가 피해를 볼까. 또 금투세는 주가가 충분히 오른 후에나 도입할 수 있다는 주장은 말이 되는 것일까.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서 ‘금투세 공포 마케팅’이라고 할 만큼 강하게 폐지론을 펴는 이들은 금투세 도입 즉시 ‘큰손들’이 국외로 빠져나가 주가가 폭락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들이 단골로 동원하는 근거는 대만이 1989년 주식 양도소득세를 도입하려다 주가지수가 36%나 하락하는 바람에 포기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자본시장연구원 보고서 등을 보면 대만은 금융실명제가 도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히 제도를 시행하려다 투자자의 반발을 산 예외적 사례다. 일본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등 대다수 선진국은 내용이 조금씩 달라도 모두 무난히 금투세를 시행하고 있다.
반대론자들은 또 선진국과 달리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증시에 금투세까지 도입되면, 시장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한국 기업의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주주 환원을 늘리는 등 증시 체질을 개선해 주가를 올린 뒤, 천천히 금투세를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고액 투자자의 사모펀드 환매 등에 매기는 세금이 금투세 도입으로 줄어든다며, ‘사모펀드 감세’라고 시비를 걸기도 한다. 이런 주장들에 관해서도 찬성 쪽 전문가들은 조목조목 반론한다. ‘금투세는 상승장이 아니라 하락장에 도입하는 게 세금 부담이 적어 오히려 낫다’ ‘증시 체질 개선과 금투세 도입은 선후가 아니라 동시 추진할 과제다’ ‘사모펀드 혜택은 무시할 수준이다’ 등이 요지다.
한겨레는 사내외 필진의 사설, 칼럼 등을 통해 금투세 시행 필요성을 일관되게 주장했고, ‘선거용 표 계산’으로 ‘유예 혹은 폐기’를 저울질하는 더불어민주당을 질타하는 등 필요한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한겨레에는 ‘의견’과 ‘주장’이 많을 뿐, 아쉽게도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팩트체크는 드물었다. 정치권 공방과 당국의 발표를 단순히 중계하는 보도 외에, 주요 쟁점별로 촘촘히 사실을 확인하고 어떤 주장이 옳은지 검증하는 보도는 찾기 어려웠다. 지난 2일 참여연대 등이 ‘금투세 논란·공포·괴담 팩트체크’ 기자회견을 했는데, 그 내용만 주식투자자협회 등의 주장과 꼼꼼히 비교해 줬어도 독자의 혼란 해소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에마뉘엘 사에즈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 등은 저서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에서 부자들이 세금을 줄이려고 치열하게 정치, 행정, 여론을 공략해온 역사를 설명했다. 부유층이 덜 낸 세금은 ‘유리 지갑’ 노동자에게 전가되거나, 복지예산 삭감 등으로 가난한 이들의 삶을 더 힘겹게 만든다고 저자들은 말했다. 주식으로 연간 5천만원 이상 버는 ‘상위 1%’ 투자자들이 그동안 안 냈던 양도소득세(금투세)를 내게 된 문제로 나라가 들썩이는 현실은 저자들의 설명을 곱씹게 만든다. ‘조세 정의’가 ‘금투세 공포 마케팅’에 무너지게 놔둘 것인가. 한겨레를 포함한 언론의 성찰과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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