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한강 이펙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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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봄 전공수업 '시 창작론' 시간이었다.
교수는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짧은 시 '섬'을 쓴 시인 정현종이었다.
그중 하나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당시 4학년 한강의 시였다.
3학년이었던 나를 포함해 많은 학생들이 그 시의 유려한 문장과 리듬감에 압도되고 도취됐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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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봄 전공수업 '시 창작론' 시간이었다. 교수는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짧은 시 '섬'을 쓴 시인 정현종이었다. 학생들이 과제로 제출한 시 가운데 정 교수가 뽑은 작품은 딱 2개. 그중 하나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당시 4학년 한강의 시였다. 정 교수는 복사본을 나눠준 후 인상 비평을 하게 했던 것 같다. 3학년이었던 나를 포함해 많은 학생들이 그 시의 유려한 문장과 리듬감에 압도되고 도취됐던 기억이 난다.
혹시나 그 시를 아직 소장하고 있을까 해서 집을 뒤져보았다. 이사할 때마다 몇 번을 버리려다가 도로 싸놓은 때 묻은 상자에서 시를 발견했다. 자필은 아니고, 타자기의 진화 버전인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한 글이었다. 제목은 '2월'. 어머니에 대한 시다. 이렇게 시작한다.
"나의 어머니, 쉰두 살, 윗입술이 잘 부르트시고, 반세기를 건너오시면서도 웃을 때면 음조나 표정이 소녀 같은, 아니 소년 같은 분. 고즈넉한 저녁 딸과 마주 앉아 마늘을 까신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풀피리 소리, 바람 찬 창으로 두리번거리던 딸은 소리의 주인공을 발견 못 한다. 이렇게 또 봄이 온다는 건가. 딸은 믿을 수가 없다. 구성진 가락은 다뉴브강의 푸른 물결, 윤심덕이 부른 노래. 광막한 황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총 8연으로 된 긴 시다. 뒷부분에선 어머니를 "그렇게 다치시고도, 벌집이 되시고도 상처로 진물 흐르지 않는 분"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한강은 '연세 시학'이라는 학과 내 모임에서도 활동했고, '편지'라는 시로 학보사가 주최하는 '윤동주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문단 데뷔도 시로 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그의 소설을 평했는데, 시적 언어는 이런 이력들과 무관치 않다. 그는 말수가 적고 조용했지만, 시를 쓸 때나 신명 나게 북과 장구를 칠 때면 용암처럼 뜨겁게 불타는 내면이 엿보였다.
쓰고 보니 요즘 유행하는 '한강 숟가락 얹기'가 됐다. 하지만 문학이 죽어가고,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에 찾아온 '축복'이 오래가길, '읽기 문화'가 부활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의 추억팔이다. 사람들이 다시 책을 잡기 시작했다. '한강 이펙트'가 계속되길 기대한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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