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노벨문학상에 대한 비문학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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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이 받든 다른 사람이 받든 상에 관심이 많다.
특히 권위가 있는 상은 수상자의 경력을 공적으로 검증하고 그가 저술한 책의 매출이나 인용 수를 증가시킨다.
수상자 4명 중 1명은 '비서구' 문화권 출신이며 1990년 이전 7%에 불과했던 여성 작가 비중은 1990~2022년 사이 33%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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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어권 수상 비중 압도적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은
급부상한 韓 문화파워 보여줘
우리는 자신이 받든 다른 사람이 받든 상에 관심이 많다. 특히 권위가 있는 상은 수상자의 경력을 공적으로 검증하고 그가 저술한 책의 매출이나 인용 수를 증가시킨다.
아주 좋은 예를 우리는 실시간 관람하고 있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평과 함께, 작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발표와 함께 그의 책 재고는 순식간에 동이 났다. 또 글로벌 출판사들이 그의 소설을 시리즈물로 묶어 전 세계 독자가 볼 수 있도록 출판할 계획이라고 한다.
소설을 읽은 지가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필자는 이 소식을 듣고 노벨 문학상에 대해 어떤 연구가 이뤄졌나 궁금해졌다. 의외로 노벨상을 주제로 다룬 연구가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졌다. 노벨 문학상과 관련해서는 이 상의 기여와 수상자에 대한 분석이 주를 이룬다.
기여 측면을 보면, 노벨 문학상은 경제·정치적 제약을 뛰어넘어 비교적 자율적인 세계 문학 공간을 통합하고 있으며 수상작이 널리 번역돼 현재 세계 문학의 표준을 구축하는 역할을 한다는 내용이다. 문자를 매개로 세계 평화나 인권, 현대 문명에 대한 성찰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연구내용도 발견된다.
수상자에 대한 분석은 노벨 문학상 역시 경제·문화적 파워가 반영된 결과라는 점이 강조된다. 사피로(Sapiro) 연구에 따르면 상의 선정 과정은 독창성이나 시의성 등 작품의 본질적 특성뿐만 아니라 집단 간 권력 관계나 문학 작품이 유통되는 사회적 조건을 반영하는 일련의 외부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수상자의 대표작이 어떤 언어로 쓰였는지를 보면 외부 요인이 경제적 힘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1990년 이전과 이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분포를 비교한 차키르와 리히터의 2023년 연구에 따르면 프랑스어의 점유율은 13.6%에서 9%로 감소했다. 스페인어도 10.3%에서 6%로 감소했다. 반면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21%에서 39%로 크게 증가했다. 영어가 부상한 것은 경제나 문화 부문에서 힘의 균형이 유럽이나 프랑스에서 영미권, 특히 미국으로 이동한 것을 반영한다.
출판업계의 권력 이동 역시 유사한 방향으로 이뤄졌다. 1970년대 이후 인수·합병을 통해 출판계는 영미권 중심의 대형 출판사와 문화 에이전트의 지배력이 강화됐다. 이로 인해 수상 기회는 대형 출판사의 매출을 좌우하는 '주요 언어'로 글을 쓰지 않는 작가, 출판사가 선택하지 않은 작가에게 야박하다는 것이 사피로의 주장이다. 노벨상에 이어 가장 권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부커상은 수상 조건에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 등 주요 언어로의 번역을 포함하고 있다. 노벨 문학상 역시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영어로 초판을 찍었거나 번역된 대표작이 없는 작가가 수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외에 19세기 말부터 도서 시장에서 시가 상대적으로 소외된 반면 소설이 지배적인 장르로 자리 잡으면서 노벨 문학상 역시 소설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도 도서 시장과 노벨 문학상의 관계를 보여준다.
언어나 장르의 집중화 현상에도 불구하고 1990년 이후 노벨상 수상자 명단은 훨씬 더 다양해졌다. 수상자 4명 중 1명은 '비서구' 문화권 출신이며 1990년 이전 7%에 불과했던 여성 작가 비중은 1990~2022년 사이 33%로 증가했다.
지난 10년간 급부상한 한국의 문화 파워, 노벨상 수상자의 분포 변화, 시적 표현을 다른 언어로 번역할 능력과 자본을 갖춘 글로벌 출판업계의 선택에, 무엇보다 문학적 재능과 따뜻한 시선으로 글을 써주신 한강 작가께 다시 한번 감사와 축하를 드린다.
[오형나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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