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알퍼의 영국통신] 카드 보내느라 年 3조원 쓰는 영국인

2024. 10. 1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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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근무했던 동료가 퇴사하면 한국인들은 당연히 송별회를 준비할 것이다.

그러나 영국인이라면 송별회보다는 송별 카드부터 사러 갈 것이다.

송별 카드가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이라면 영국에 살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 증명된다.

이렇게 겉으로만 보면 영국사람들이 카드에 열광하는 것 같지만 진실을 밝힌다면 영국인들은 카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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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생일·출산 등 이벤트마다
카드 주고받는 문화 남아있어
무례한 사람으로 보이기 싫어
1인당 한해 18만원씩 쓰는 셈
영국의 한 문구점에 비치된 카드들. 블룸버그

함께 근무했던 동료가 퇴사하면 한국인들은 당연히 송별회를 준비할 것이다. 그러나 영국인이라면 송별회보다는 송별 카드부터 사러 갈 것이다. 송별 카드가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이라면 영국에 살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 증명된다.

영국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이벤트에 맞는 카드를 살 수 있다. 운전면허시험 합격부터 대학 입학(혹은 졸업), 취업, 이사 등을 축하하는 카드부터 고인의 명복을 비는 위로 카드 등이다. 최근에는 이별이나 이혼 축하 카드마저 등장했다. 물론 거기에 성탄절, 생일, 세례, 부활절, 아기 출생을 축하하는 카드까지 어떤 경우라도 카드가 늘 함께한다.이렇게 겉으로만 보면 영국사람들이 카드에 열광하는 것 같지만 진실을 밝힌다면 영국인들은 카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그런 척해야 할 뿐이다.

영국에서는 아주 어릴 때부터 친구 생일파티에 초대를 받으면 선물과 함께 반드시 카드를 준비해야 한다. 대개 선물은 책이나 장난감, 학용품이긴 하지만 선물을 개봉할 때가 되면 아이들은 포장지를 찢고 뭐가 들어 있는지 보고 싶어 마음이 급하다. 하지만 부모들은 이렇게 말한다. "먼저 카드부터 열어봐야지."

아이들은 호기심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며 카드를 먼저 열고 거기에 적힌 문구를 읽으며 '와, 카드가 예뻐요' '오, 너무 착한 친구예요' 등 상투적인 문구를 뱉어낸 후에야 마침내 선물을 열고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다. 물론 그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그들의 자녀들에게 똑같이 강요하며 이 비밀스러운 속임수가 무한대로 반복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설상가상은 카드에 담긴 내용이다. 대부분 카드에는 축하 메시지가 인쇄돼 있기에 우리가 써야 할 것은 상단에 '누구에게', 하단에 '누구로부터'가 전부다. 카드 제조업체에서 충만한 감정이 담긴 아름다운 문구를 인쇄해놓았으므로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돈을 내고 카드를 사는 것이 전부다.

그 결과 영국인들은 연간 13억~16억파운드를 카드에 소비한다. 영국에서는 슈퍼마켓, 우체국, 문구점, 서점, 심지어는 주유소에서도 카드를 구매할 수 있으며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최소 하나 이상의 카드전문점이 있다. 놀랍게도 이곳은 늘 북적댄다.

경제적인 위기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카드를 구매하는 대신 직접 만들기도 한다. 색지, 반짝이, 봉투 등을 구매하고 (구글에서 약간의 도움을 받아) 카드에 메시지를 직접 쓴다.

하지만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카드도 평균 3000원, 약간의 장식이 더해지면 가격이 두 배가량 쑥 올라간다. 만약 챙겨야 할 친구나 동료가 많은 사교적인 사람이라면, 연간 카드 지출에 사용하는 금액이 100파운드는 족히 넘을 것이다. 무례한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영국인들은 이같이 전통을 이어간다. 진정한 영국인이라면 무례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굶거나 추위에 떠는 편을 택할 것이다.

[팀 알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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