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는 인텔 출신, 삼전은 재무 출신…사외이사부터 갈린 `밸류업`
지배구조 개선이 기업 밸류업을 위한 주요 사안으로 떠올랐지만, 여전히 국내 기업들의 사외이사는 회사에 대한 조언과 견제라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삼성전자부터 사외이사를 정부 관료 출신 인물을 중심으로 꾸렸다. 대만 TSMC가 인텔 부사장과 미국 상무부 관계자를 자리에 임명해 기술 경쟁력과 수출 관련 리스크에 대응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현행법상 사외이사 임명이 사실상 회사 오너의 입맛에 맞는 인물을 섭외할 수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4일 삼성전자 공시에 따르면 현재 삼성전자 사외이사 6명 중 반도체 관련 전문가는 1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경쟁사인 TSMC의 사외이사 7명 중 4명은 반도체 업계 관련 인물이었다.
삼성전자 사외이사는 대부분 '금융 전문가'로 채워져 있다. 김한조 전 하나금융지주 부회장과 김준성 전 삼성자산운용 CIO,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등 전체 사외이사 절반이 금융 관련 전문가다.
삼성전자가 다음으로 많이 신경쓴 곳은 '정부 출신' 인물이다. 유명희 전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을 사외이사에 임명했고, 신 전 금융위원장 역시 기재부와 금융위를 거친 정부 관료 출신이다.
나머지 두 명의 사외이사는 허은녕 한국에너지법연구소 원장과 조혜경 한성대 AI응용학과 교수로 채워졌다. 허 이사는 ESG, 조 교수는 미래 먹거리 사업인 '로봇사업' 분야 전문가라는 것이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반면 TSMC는 대부분 반도체 업계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임명했다. 피터 본필드 전 NXP반도체 회장, 마이클 스플린터 전 인텔 부사장, 모세 가브리엘로프 전 자일링스 CEO, 라파엘 리프 전 MIT 총장 등 전체 절반 이상을 업계와 관련된 인물로 임명했다.
향후 사업 확장 측면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린 라버티 엘센한스 전 수노코 회장을 영입해 에너지 분야를 강화했고, 미국 상무부 공급망 경쟁력 자문 위원회 부의장인 어슐러 번스 전 Xorox CEO도 최근 TSMC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사외이사 대부분이 반도체나 경영과 관련이 있고 특히 최근 인공지능(AI) 관련 반도체 최대 리스크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의 반도체 수출입 관련 정책 관계자까지 섭외했다. 사외이사의 핵심 역할인 경영진에 대한 감시 기능과 기업 전략 수립 조언에 적합한 인물들이라는 평가다.
반면 삼성전자 사외이사의 경우 재무와 정치 리스크 해소에 편향되면서 기술과 수출 관련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3년간 주가 변화를 살펴보면, 지난 2021년 1월 8만원대였던 삼성전자 주가가 최근 6만원대로 하락한 반면 TSMC 주가는 650대만달러에서 최근 1000대만달러까지 급등했다.
최근 3년은 AI 반도체 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엔비디아 등 관련 종목들의 주가가 급등한 시기다. 대부분의 글로벌 반도체 회사들의 주가가 높아진 것과 비교해 삼성전자는 기술력 경쟁에 뒤쳐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주가가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전문가들은 현행법상 사외이사가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국내 기업 대부분이 자기 입맛에 맞는 사외이사를 선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밸류업의 핵심으로 꼽히는 '지배구조 개선'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현재 상법상 사외이사는 기업이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회에서 추천한 인물 중 하나를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구조다.
하지만 사외이사추천회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것을 이사회가 결정하도록 해 사실상 견제기능을 할 수 없는 수준이다. 법령으로 사외이사 추천 후보에 주주가 추천한 인물 1인을 추천하도록 돼있지만, 현재 주총 투표 방식을 고려하면 결국 이사회가 추천한 인물이 사외이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이 사외이사를 사실상 '오너'가 결정하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사외이사의 이사회 안건 찬성률도 높아지고 있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181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163곳의 사외이사가 지난해 이사회 안건에 100% 찬성표를 던졌다. 삼성전자 사외이사 역시 지난해 단 한번의 반대표를 행사하는데 그쳤다.
시총 1위 삼성전자뿐 아니라 국내 기업 대부분이 이같은 방식으로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국내 30대 기업이 새로 선임한 사외이사 중 관료 출신 비중은 2022년 30.5%에서 지난해 34%로 늘었고, 올해는 40% 수준까지 높아졌다.
기존 학계 출신을 사외이사로 선호하던 기업들이 '관피아'에 집중하는 것이 결국 '오너 리스크'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일각에선 최근 이슈로 떠오른 '상법 개정'을 통해 사외이사의 견제기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기존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하는 내용이다.
이상복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외이사 역시 이사의 범주에 들어가고, 이사의 충실의무가 주주까지 확대된다면 사외이사 역시 회사가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할 경우 충실의무를 위반한 것이 된다"며 "상법 개정과 함께 사외이사 선정 방식 역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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