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화려할 수 없다…관객 압도한 베로나 오페라 '투란도트'
날카로운 투란도트·지고지순 류
역대급 주역 성악가들 조화로워
황금빛 무대와 어두운 군중 대비
극적 효과로 객석 탄성 터져나와
다니엘 오렌 섬세한 지휘도 빛나
19일까지 KSPO돔서 매일 공연
대형 오페라의 매력이 제대로 살았다. 지난 12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막을 올린 '2024 오페라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은 역대급 규모에 화려한 무대 장치와 수준급 연주, 연기, 가창이 어우러진 무대를 선사했다.
역대급이란 말은 과장이 아니다. 너비 50m, 높이 20m에 달하는 대형 무대는 세계 최대로 꼽히는 이탈리아의 여름 오페라 축제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에서 떼어다 화물선으로 옮겨왔다. 20세기 연출계 거장 고(故) 프랑코 제피렐리의 거대하면서도 섬세한 연출을 구현하기 위해 오케스트라 연주자부터 연기자, 합창단 등 무대에 올라온 인원만 500명에 달했다. 올해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맞아 성사된 베로나 축제의 첫 전막 오페라 내한이다.
'투란도트'는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 푸치니의 유작으로, 우리나라 오페라 애호가들에게도 사랑받는 작품이다.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냉혹한 공주 투란도트와 그녀의 사랑을 쟁취하려는 칼라프 왕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목숨을 던지는 헌신적 사랑을 보여주는 시녀 류, 극에 위트를 더하는 신하 핑·팡·퐁, 공주의 아버지인 황제 알툼 등 다양한 캐릭터가 나온다. 오페라의 현대화를 위해 배경을 바꾸거나 연출가의 해석을 더하는 '레지테아터' 작품이 많아졌지만, 제피렐리 제작 버전은 푸치니 원작의 오리엔탈리즘이 그대로다.
제피렐리 연출에서 자주 존재감을 뽐낸 건 수십 명의 이름 없는 '군중'이었다. 130여 명의 합창단과 무용수 등으로 이뤄진 이들은 공연장이 암전되기 전부터 무대에 올라 몸을 웅크린 채 억압받는 모습을 표현했다. 극이 전개될수록 관객의 시선을 한데 모으는 역할도 했다. 좌우로 긴 무대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자칫 관객 시선을 흩트릴 수도 있었지만, 군중 역할의 인파가 거대한 물결을 이루듯 시선과 손짓으로 극을 따라갈 수 있게 도왔다.
어두운 군중의 세계는 2막에서 등장하는 황금빛 궁궐 세계와의 대비로 극적인 느낌을 배가했다. 어두운 색의 벽이 열리며 황궁의 모습이 나올 때 객석에서 탄식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여기에 애크러배틱을 곁들인 전통 사자춤이나 부채춤 등 다양한 볼거리도 이어졌다.
귀로 듣는 노래도 웅장했다. 다니엘 오렌의 지휘는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 위너오페라합창단, 송파구립소년소녀합창단 등 대규모 연주자들을 섬세하게 조율했다. 오렌은 스무 살이던 1975년 카라얀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1위를 거머쥐었고, 현재 베로나 축제 음악 감독을 맡고 있다. 공연장 음향 수준도 대체로 호평이었다. 공중에 매단 마이크를 통해 소리가 전달하는 방식으로 파찰음을 줄였고, 노랫소리의 강약 조절도 잘 전달됐다.
무엇보다 가수들의 세계적 역량이 빛을 발했다. 테너 마틴 뮐레는 연기력과 가창력 모두 칼라프 그 자체로 분했다. 무대가 큰 만큼 움직임도 많았지만 어색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3막 아리아 '네순 도르마'(아무도 잠들지 말라)에서 힘 있는 고음과 카리스마 있는 음색으로 큰 환호를 받았다. 앙코르를 기대하는 박수갈채가 이어졌지만 그는 가슴에 손을 얹어 감사 표시만 한 뒤 다음 장면 연기를 이어갔다.
두 여성 캐릭터 투란도트와 류는 음색부터 대조적이었다. 투란도트를 맡은 우크라이나 소프라노 옥사나 디카는 중국의 전통 경극처럼 날카롭게, 시녀 류 역할의 이탈리아 소프라노 마리안젤라 시칠리아는 더없이 애절하게 캐릭터를 표현했다. 특히 류의 1막 아리아 '주인님 들어주세요', 3막 아리아 '숭고하신 공주님' 모두 큰 박수를 끌어냈다. 대형 무대임에도 섬세하고 순수한 곡의 매력을 잘 전달했다.
공연은 오는 19일까지 매일 열린다. 무대를 비추는 전광판이 따로 없으니 출연진의 세세한 표정과 연기를 감상하고 싶다면 오페라글라스(망원경)를 챙겨가도 좋겠다. 한글·영어 자막 화면은 무대 좌우 끝에 설치돼 있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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