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순간 담은 사회 이슈… 그의 메시지는 살아 숨 쉰다
평등·권력·인종차별 문제 등 즐겨 다뤄
마지막 걸작 꼽히는 ‘숲속에서 2020’
자연 앞에 선 인간의 연약함 잘 보여줘
폐기종 앓던 작가, 3가지 모습 그려낸
‘I wish, I am, I will be’도 국내 첫 선
11월 2일까지 공근혜갤러리서 전시회
웅장하게 떨어지는 폭포수 아래 한없이 나약한 모습의 인간들이 보인다. 흑과 백의 강렬한 명암 대비로, 자연의 위대한 힘과 거룩함, 그리고 그 앞에 선 인간의 연약함을 부각시키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그동안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며 살아온, 거만했던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메시지를 건넨다.
지난해 9월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작가는 스튜디오와 야외 로케이션 작업을 통해 평등, 권력, 인종차별, 표현의 자유, 민주주의, 기후변화, 사회현실, 성차별, 금기 등 동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이슈를 즐겨 다루었다.
자신의 짧은 삶을 예측한 그는 모든 연작물에 자화상을 한 점씩 담아왔다.
‘April fool 2020’은 제목 그대로 코로나 사태가 4월 1일, 만우절에 장난을 치는 거짓말이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대변한다. 코로나19는 선천성 폐질환을 앓고 있던 그에겐 더욱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하루아침에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직면한, 믿고 싶지 않은 이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그는 홈타운 암스테르담을 배경으로 자신의 작품에 출연해 현실감을 더했다. 감정 표현을 더욱 극대화시킨 것이다. 작가 내면의 개인적인 기록이기도 하지만 코로나를 겪고 있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 연작은 대구 사진 비엔날레의 대표작으로 전시된 바 있고, 2022년 수원시립미술관에 영구 소장됐다.
‘Ladies Hats’(여성모자, 1985∼2022) 시리즈는 19세기 후반까지 서양 미술사 전반에 걸쳐 머리 장식이 유행했다는 사실에서 착안했다. 렘브란트로부터 영감을 받은 올라프는 명암법을 채택해 여성용 모자를 쓴 남성의 초상화 시리즈를 만들었다. 모델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관객을 바라본다. 화려한 모자와 풍부한 표정의 포즈로 보는 이들을 유혹한다. 그러나 이미지의 우아한 외관 뒤에는 더 심각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작가는 자신이 세운 모델의 중성성을 활용함으로써 지배적인 마초 문화의 규범에 반대하고 나섰다.
‘Chessmen’(체스맨, 1987∼1988)은 올라프의 첫 순수사진 연작이다. 1980년대 후반 ‘권력’이라는 주제에 집중하고 있던 그는 32개의 조각으로 구성된 전쟁 게임 체스에서 힌트를 캐내 이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사람들은 왜 권력을 남용하는가? 왜 그걸 원하는 걸까? 어떤 사람들은 왜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도록 허용할까?’ 이러한 질문에서 파워 게임과 이를 플레이하는 사람들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는 이 작품으로 ‘젊은 유럽 사진가상’을 받으며 세계 무대에 등단했다.
‘Berlin(베를린)’ 2012, ‘Shanghai(상하이)’ 2016, ‘Palm Springs(팜스프링스)’ 2018은 변화를 겪고 있는 대도시인 독일의 베를린, 중국 상하이, 미국 팜스링스를 배경 삼아 제작한 대규모 3부작 로케이션 연작이다.
베를린 시리즈는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진 이후 유럽에 먹구름이 몰려오던 시기에 제작됐다.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구세대에서 신세대로의 권력 이양에 대한 작가의 우려를 담았다.
상하이는 인구 2400만명의 초현대적 대도시를 다룬다. 이 같은 환경에서 개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관찰한 작품이다.
팜스프링스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온난화로 사막화되어가는 기후변화다. 등장 인물들의 초상화, 풍경 사진에서 그는 십대들의 임신, 인종차별, 종교적 학대, 부의 양극화 등의 문제들을 토로한다. 이 작품은 대구미술관이 영구 소장하고 있다.
‘Keyhole’(열쇠구멍, 2011∼2013)은 사진 설치, 영상 작품이다. 우리의 삶이 규범과 가치에 의해 공개적으로 지배되는 시대다. 편협함, 가십, 위선 등 모든 사회가 안고 있는 일상의 모순을 담고 있다. 일반적인 규범과 사회적 가치가 적용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행동들을 제3자의 시선으로 열쇠구멍을 통해 들여다보며 자연스럽게 문제점을 상기하게 된다.
그가 포착하는 사진과 영상의 앵글은 영화의 미장센과 다를 바 없다.
“내가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균열이 내재된 완벽한 세상이다. 작품을 몹시 매혹적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을 일단 작품 속 이야기로 끌어들인다. 그런 다음에 작품을 통해 타격을 주려 한다.”(어윈 올라프)
어윈 올라프의 작고 1주년 특별회고전이 11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열린다. 그의 대표작 ‘I wish, I am, I will be’가 국내 첫선을 보인다.
김신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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