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의 금융 디파인(DeFine) <7>] 진퇴양난의 부동산 금융, 주택 담보대출 확대 딜레마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2024년 1분기 기준 92.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국 중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이미 과도한 부채가 소비와 성장을 제약하는 임계치를 넘은 지 오래다. 또한 서울의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PIR)은 15에서 재상승하고 있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 그곳에선 모든 것이 다르게 이루어졌다(The past is a foreign country. they do things differently there).” 영국 소설가 L.P. 하틀리의 ‘중재자(The go-between)’라는 소설의 첫 문장이다. 과거는 낯선 나라처럼 현재와는 완전히 다른 규칙, 관습, 사고방식이 지배하던 시기라는 점을 묘사하고 있다.
한국 금융제도의 발전사를 보면 이 문장을 떠올릴 때가 많다. 일례로 부동산실명제가 도입된 것이 1995년 7월이다. 부동산을 실명으로 보유하기 시작한 것이 30년이 채 되지 않았다. 부동산 실거래 가격 신고제가 실시된 것이 2006년 1월, 실거래 가격의 등기부 기재가 시작된 것이 같은 해 6월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부동산 시장에서 실제 명의자와 거래 가격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데 무려 48년이 걸렸다.
그뿐만 아니다. 부동산에 대한 제도권 대출은 외환 위기 이전에는 극히 제한적이었으나, 외환 위기 이후에 이래도 괜찮을까 싶을 만큼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제도권 금융 없이 성장한 주택 시장
1997년 외환 위기 이전에는 부동산 관련 여신 제한 및 부동산 취득 관련 규제 등 투기 억제책이 기본적인 정책 방향이었다. 정부는 부동산 개발, 투자 관련 업종을 여신 금지 업종으로 분류해 은행 대출을 금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콘도미니엄업, 건평 또는 대지 330㎡ 초과 식당업, 주점업, 부동산업, 골프장 등 아홉 개 부동산 업종에 대해서 여신을 금지했다. 그뿐만 아니라 가구당 100㎡를 초과하는 주택, 오피스텔, 스키장 및 유원지 건설 또는 매입에 대해서도 여신이 금지됐다. 토지 매입 자금은 서민주택 건설용, 공장 건설용, 실수요자 농지용, 학교법인 교지용, 비영리법인이 정부로부터 매입하는 사옥 건설용 및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는 도로 건설 사업용 등을 제외한 영역에서 여신이 불가했다.
또한 고유 사업 영역과 관계없는 대기업의 부동산 취득에 대한 문제점이 본격 거론되면서 10대 대기업 집단에 대한 부동산 취득도 규제됐다. 부동산 취득에 대한 주거래 은행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했고, 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한 주거래 은행의 처분 촉구 등이 가능하기도 했다.
주택 구매를 위한 가계의 금융 접근성은 모든 복지국가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정책이다. 주택은 고가의 자산이기 때문에 가계가 자기 자금만으로 매입하기 어렵고, 주거 안정성이 복지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의 경우 부동산 부문에 대한 제도권 금융 자원 배분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비제도권 자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외환 위기 직전인 1996년의 주택 금융시장 규모는 203조원이었는데 제도권 주택 금융이 38.4%에 불과했다. 이 중 공공자금 11.5%를 빼면 금융기관 대출은 26.9% 정도였다. 그나마 일반 대출의 절반이 주택 구매에 사용됐을 것이란 가정하에서 산출한 수치다.
실제로 주택 자금 대출이라는 명목하에 나간 돈은 20조5000억원으로, 주택 금융시장의 10%에 불과했다. 반면 비제도권 금융이라 할 수 있는 전세 보증금이 110조원, 선분양 자금이 15조3000억원으로 61.6%를 차지했다. 다시 말해 한국의 주택 시장이 제도권 금융 없이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때까지의 부동산 가격 상승은 실질소득 상승과 주택 공급 부족에 기인했고, 부동산 가격 버블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까웠다.
이 지점에서 미국에서 촉발된 서브프라임모기지 금융 위기,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로 인한 잃어버린 30년, 한국의 1997년 외환 위기의 차이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저금리 기조하에서 누적됐던 과도한 주택 담보대출이나 부동산 과잉 투자가 위기의 주요 원인이었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금리 인상으로 인한 부동산 가격 하락이 금융권의 부실을 초래하고 실물경제를 위축시켰다. 반면 한국이 경험한 1997년 외환 위기는 그 양상이 매우 다르다. 당시 부동산 시장은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우리 부동산 부문은 금융 부문으로부터 격리돼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위기의 원인은 외화 유동성 부족과 일부 대기업의 과잉 투자로 인한 부실이었고, 실물경제의 충격이 부동산 가격 하락을 야기했다. 외환 위기 당시 기업에 부동산 자산 매각은 오히려 위기 극복의 주요 수단이었다.
부동산, 경기 부양책으로 쓰이며 ‘진퇴양난’
외환 위기 이후 내수를 떠받치고 있는 부동산 경기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경기 침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부동산 정책이 총동원됐다. 부동산 관련 대출을 제한하던 여신 운용 규정이 1998년 1월 개정돼 대출이 자율화됐고, 신탁업법 개정으로 은행에서도 부동산 신탁 상품이 출시됐다. 자금 조달 측면에서도 ‘자산 유동화에 관한 법률’ 및 ‘부동산 투자 회사법’ ‘간접투자 자산 운용업법’ 등이 제정됐다. 그뿐만 아니라 분양가 전면 자율화, 양도세 한시적 면제, 분양권 전매 허용, 토지 거래 허가 및 신고제 폐지, 택지 소유 상한제 폐지, 민영 아파트 재당첨 제한 기간 폐지 등 부동산 규제가 완화됐다.
이 시기부터 주택을 포함한 부동산 경기가거시경제의 흐름을 좌우하는 패턴이 정착되기 시작했다. 경기 침체 때는 경기 부양을 위해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고, 부동산 시장으로 자금 유입이 경제에 부담을 주기 시작하면 규제를 강화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2024년 1분기 기준 92.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국 중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이미 과도한 부채가 소비와 성장을 제약하는 임계치를 넘은 지 오래다. 또한 서울의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PIR)은 15에서 재상승하고 있다. 부동산 대출을 줄이자니 집값 하락과 프로젝트 파이낸싱(PF·Project Financing) 부실 확산이 우려되고, 늘리자니 주택 가격 버블을 키우는 진퇴양난의 위태로운 시기를 잘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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