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행적 문화행정과 ‘미인도’ 지키기 [6411의 목소리]

한겨레 2024. 10. 1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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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문화예술 공간 ‘미인도’를 둘러싸고 성북문화재단이 파행적 행정을 하는 데 대해 지난 6월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사진 곽병국

이채원 | 협동조합 ‘고개엔마을’ 사무국장

서울시 성북구 미아리고개 하부에 있는 공간 ‘미인도’는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제안하고 가꿔온 공간이다. 이 공간에는 문화와 예술을 통해, 흩어진 삶을 모아 입체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함께 만들어가고자 하는 소망이 담겨 있다. 나는 이 안에서 피어난 ‘시민’이다. 나는 활동가이자, 문화기획자이고, 예술가이다. 나는 발로 뛰어 시민의 권리를 외치기도 하고, 시민이 발붙일 터를 만들어내기도 하며, 시민이기를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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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나는 미인도 인근 성신여대를 다니던 신입생이었다. 극회에서 연극을 기획하며 성북문화재단과의 연결을 시도하다가 재단 담당자의 소개로 ‘아름다운 미아리고개 친구들’(아미고·2016년 미아리고개예술마을만들기 워킹그룹 활동의 일환으로 꾸려진 주민 커뮤니티)과 적극적으로 결합하였다. 아미고는 미인도 활성화를 목표로 활동하다가 2017년 ‘협동조합 고개엔마을’로 조직화하며 성북문화재단과 미인도 공동운영 협약도 맺었다. 그렇게 나는 미인도를 무대로 내가 하고 싶은 예술 활동을 시작하며 이곳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7년간 나름 평안하고 즐거운 미인도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던 나는 올해 투쟁의 한가운데 서 있게 되었다. 오랜 기간 생태계를 함께 일궈온 성북문화재단이, 서노원 대표의 취임 이후 모든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협동조합 고개엔마을과 성북문화재단은 함께 ‘미인도 공동기획전 동네예술광부전’을 준비 중이었으나, 2024년 5월8일, 성북문화재단 대표는 법적, 행정적 근거가 없는 자의적 판단으로 참여 작가 2명을 배제하라는 지시를 하였다. 이에 대해 조합을 비롯한 시민사회가 모여 문제제기를 하자 조합과 맺고 있던 미인도 공동운영 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해버렸다. 이 권위주의적 행정은 미인도가 어떤 의미를 가진 공간인지 알고나 이뤄졌을까.

수년간 미인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미인도에 대한 나의 시각은 네 단계로 변화해왔다. 이 변화는 예술가이자, 문화기획자, 활동가로 나 자신이 변모하고 진화하는 과정과 맞물린다. 첫번째 단계, 활동 초기 나에게 미인도는 하드웨어 차원에서의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관리하기 까다롭지만, 활동의 터가 되어주는 하드웨어였다. 두번째 단계는 미인도에 모이는 사람들에게서 생성되는 이야기를 지켜보는 담론 생성의 터로서의 역할이었다. 세번째는 미인도를 두고 논의되는 제도, 정치, 정책, 도시권, 커먼스, 시민력 등 미인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상징이 중요해졌다. 네번째 단계에선 미인도와 미인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우리의 관계를 새롭게 성찰하고 있다. 미인도는 요즘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미인도의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가 미인도의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고 모여 있는 이 순간을, 미인도는 반기고 있는 것 같다. 성북문화재단이 빼앗으려는 미인도를 시민의 것으로 지키려는 우리의 투쟁은 우리를 어디로 나아가게 할까?

나는 지금 미인도가 주는 양분을 먹으며 예술가에서 기획자로 또 활동가로 변모하며 그 사이 언저리에서 시민이 되기를 외치고 있다. 미인도는 시민을 만들고 연결한다. 연결된 시민의 힘은 다시 미인도를 지켜내고, 새로운 차원의 공간이 된다. 내 일의 전부는 그런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이 땅에 시민으로 발붙이고 서기 위한 활동이자 기획이자 예술이다.

“우리는 시민이고, 이 도시의 주인이다.”(2024.07.22. ‘성북문화재단의 파행적인 문화행정 규탄 및 예술인 권리 침해에 대한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 신고 기자회견문’) 미인도를 둘러싼 투쟁은 공간을 독점하려는 이익집단의 투쟁이 아니다. 우리는 미인도의 목소리를 빌려 시민이기를 외치고 있다. 미인도, 그리고 미인도의 투쟁에는 그간 쌓아온 생태계, 거버넌스, 시민 되기라는 다층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미인도는 진짜 시민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권위주의는 우리를 깨뜨리기 위해 돌을 던졌지만, 우리는 깨지지 않고 물결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모이고 성찰하며 그 물결을 퍼뜨리고 있다. 미인도와 함께 우리는 생동하는 도시를 만들고 있다. 그러기에 미인도를 지키는 투쟁은 시민의 권리를 지키는 투쟁이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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