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만원대 못벗어나는 고려아연 선물 가격… 무슨 의미일까

권오은 기자 2024. 10. 1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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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마지막 베팅이었을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 인상은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고려아연은 지난 11일 공개매수 가격을 83만원에서 89만원으로 인상했지만, 같은 날 고려아연 주가는 소폭 오르는 데 그쳤다.

특히 고려아연 주식 선물(11월물) 가격은 60만원대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개매수가 끝난 뒤 주가가 급락할 가능성을 선물시장 참여자들이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영풍·MBK파트너스와 고려아연 간 경영권 다툼이 장기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투자자가 많은 것이다.

앞서 영풍·MBK파트너스와 고려아연 양측 모두 공개매수 최소 매입 수량을 뒀다가, 이후 삭제했다. 원하는 만큼 공개매수가 들어오지 않아도 응모 수량은 모두 사들이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처럼 사활을 건 만큼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할 수 있는데도, 선물 가격은 힘을 얻지 못한 셈이다.

(서울=뉴스1) 장수영 기자 = 고려아연 이사회가 열린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 안내판의 모습.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과 경영권 분쟁 중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이날 이사회를 소집했다. MBK-영풍 측이 공개매수가를 동일 가격인 83만 원으로 높인 만큼, 공개매수 가격 인상을 논의할 예정이다. 2024.10.11/뉴스1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고려아연 11월물 선물은 지난 11일 종가 69만3000원을 기록했다. 같은 날 고려아연 주식 현물 종가 79만4000원보다 12.7%(10만1000원) 낮았다. 고려아연 11월물 선물 만기일인 다음 달 14일에 고려아연 주가가 지금보다 하락할 것으로 보는 투자자가 많다는 의미다. 고려아연 11월물 선물은 11일 한때 67만원까지 미끄러졌다가, 그나마 장 막판 반등했다.

보통 경영권 분쟁 관련 공개매수가 끝나면 주가가 급락하는데, 이에 대해 투자자들이 크게 우려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주가도 카카오의 공개매수가 끝나고 이튿날 15.02% 하락했다. 영풍·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는 이날 마무리되고,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는 오는 23일로 끝난다.

A증권사 운용 담당자는 “헤지(위험회피)를 위해 고려아연 11월물 선물은 매도하려는 수요는 많은데 받아줄 주체가 한정적인 상황”이라며 “무엇보다 경영권 분쟁 관련 공개매수가 끝나면 주가가 크게 하락하는 만큼, 선물 가격이 이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60만원대 후반의 선물 가격은 어떤 의미에서는 상당히 절묘한 가격이다. 일단 고려아연 11월물 선물 가격은 공개매수 경쟁이 불붙기 전 현물 주가(55만6000원)보다 높은 수준이다. 거래량이 많지는 않지만 오는 12월 12일이 만기인 고려아연 12월물 선물 종가도 지난 11일 기준 67만원을 기록했다.

선물시장 참여자들이 공개매수가 끝났다고 해서 고려아연 주가가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이 불거지기 전에 고려아연 주가가 회사 가치보다 너무 낮은 측면이 있었다”면서 “공개매수 이후에도 소송 등 분쟁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 보니 선물 가격이 과거 주가보다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금투업계 관계자는 “만약 MBK파트너스 측 공개매수에 3~4%의 지분만 들어온다고 해도, MBK 측이 추후 임시주총을 열어 현 경영진을 물갈이할 수 있는 확률이 0%라고는 할 수 없다”면서 “경영권 분쟁 장기화 가능성을 어느 정도 감안한다면 60만원대 후반의 주가는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고려아연 현물 주가도 영풍·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 가격(83만원)이나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89만원)을 밑돌고 있다. 투자자들이 선뜻 ‘사자’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공개매수에 응모한 주식을 모두 처분하지 못할 가능성 때문이다.

현재 고려아연 전체 주식 수 2070만3283주 가운데 경영권 분쟁 중인 양측과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펀드 물량 등을 제외한 400만~500만주를 유통 주식 수로 본다. 영풍·MBK파트너스가 최대 302만4881주를, 고려아연이 최대 362만3075주를 매입하기로 한 만큼 단순 계산하면 양쪽에 보유 주식을 적절히 나눠 응모하면 모두 처분해 이익을 볼 수 있다.

문제는 변수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영풍·MBK파트너스보다 고려아연의 공개매수 가격이 높은 만큼 영풍·MBK파트너스 공개매수가 부진할 경우, 고려아연 자사주 최대 매입 물량을 유통 주식 수가 웃돌게 된다. 고려아연은 예고한 자사주 공개매수 물량보다 응모 물량이 더 많으면 안분비례해 사들일 예정이다. 투자자 입장에선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에 응해도 보유 물량을 모두 팔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법원 판단에 따른 위험 요인도 있다. 영풍·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을 상대로 법원에 ‘자사주 공개매수 절차 중지 가처분’을 지난 2일 제기했다. 오는 18일 법원이 영풍·MBK파트너스 주장을 받아들이면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멈추게 된다. 영풍·MBK파트너스 공개매수 대신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를 노리던 투자자는 시장에 매도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B증권사 운용 담당자는 “경영권 분쟁이 불거지고 한달 만에 고려아연 주가가 40% 넘게 오른 상황에서 공개매수 가격만 보고 투자에 나서기엔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영풍·MBK파트너스의 이날 공개매수 응모 결과가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고려아연은 지난 11일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을 1주당 83만원에서 89만원으로 올리고, 최대 매입 물량도 전체 발행 주식의 약 15.5%인 320만9009주에서 약 17.5%인 362만3075주로 늘리며 투자자 잡기에 나섰다.

고려아연의 반격 카드가 얼마나 효과를 볼지는 미지수다. 지난 11일 고려아연 현물 주식 거래량은 34만6886주, 거래대금은 2750억원에 그쳤다. 지난 4일 고려아연이 자사주 공개매수를 선언하고, 영풍·MBK파트너스가 발맞춰 공개매수 가격을 75만원에서 83만원으로 올린 날 거래량이 123만27주(거래대금 9420억원)에 달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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