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형 퇴직연금이 더 문제다[금융시장 돋보기]

최은영 2024. 10. 1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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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부가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전격 선언했다. 기금형이 수익률 제고를 위한 가장 근본적이고 확실한 해법임은 호주,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의 앞선 경험으로 확인됐고 도입 20년 된 계약형 퇴직연금의 부진한 수익률도 이를 방증하고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기금형 도입은 퇴직연금의 새로운 20년 역사를 만들어 갈 근본적인 지형 변화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지금 상태에서 기금형을 도입하면 수익률 제고에 따른 노후 소득 증대 효과는 확정기여형(DC)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전체 적립금의 절반이 넘고 300만 명 이상 근로자가 가입한 확정급여형(DB)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반쪽짜리가 될 수 있다. 이유는 간명하다. DC형은 기금형 도입으로 높아진 수익률이 고스란히 근로자의 노후 소득 증대로 이어지지만 DB형은 수익률이 높아져도 근로자의 노후 소득이 되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DB형은 평균임금과 근속연수를 곱한 만큼 연금급여가 미리 확정되는 제도다. 근로자의 노후연금소득을 결정하는 것은 매년의 임금 상승률이지 운용수익률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기금형을 도입해도 DB형 적립금의 운용을 책임지는 사용주는 적극 운용할 유인이 크지 않다. 요구수익률이 임금 상승률이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요구수익률은 2.8%(상용근로자 임금상승률)로 낮았기 때문에 원리금보장상품 등으로 운용해도 연금재정에 무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선진국의 DB형이 우리와 같은 것은 아니다. 요구수익률이 우리보다 훨씬 높다. 임금상승률에 따라 연금 급여가 정해지는 건 마찬가지지만 우리와 달리 종신연금이 의무화돼 있어 장수위험 등의 부담이 요구수익률에 추가된다. 이 때문에 선진국 DB형은 운용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기금형을 도입할 경우 DC형과 DB형 소득대체율은 장기적으로 격차가 발생한다. 근로자의 노후소득에 격차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필자가 추정해 보니 현재 소득대체율은 DC형이 13%, DB형이 16%로 DB형이 높다. 임금상승률이 운용수익률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금형 도입으로 수익률이 가령 미국의 퇴직연금인 401(k) 수준(5%)으로 높아지면 DC형 소득대체율은 19%로 높아진다. 수익률 성과가 근로자의 노후소득 증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DB형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기금형 제도 아래서 DB형은 DC형으로 전환될 것이다. 해외에서도 수익률이 높은 DC형으로 전환은 하나의 큰 흐름이다.

그러나 사업장 특성이나 근로자 성향으로 DB형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는 만큼 근로자 선택권을 위해서라도 DB형 제도의 개선은 불가피해 보인다. 글로벌 사례를 보면 기본방향은 순수 DB형을 혼합형(hybrid)으로 연금 구조를 수정하는 것이다. 혼합형은 다양한 방식으로 구조화가 가능한데 우리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도 가장 단순한 방식은 허용하고 있다. 바로 부담금을 나눠 DB와 DC에 동시 가입하는 방법이다. 가령 부담금의 절반은 DB형을 택해 임금상승률만큼의 수익률로 노후재산의 안정성을 추구하고 나머지 절반의 부담금은 DC형을 택해 기금형 제도 아래서 수익성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방법이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건의한 경영성과급 DC 역시 DB형을 택한 기업에서 DC형을 활용하려는 혼합형 제도의 한 형태다.

혼합형의 또 다른 형태는 영국, 네덜란드, 캐나다, 덴마크 등에서 볼 수 있는 집단형 DC(CDC)다. CDC는 근로자가 각자 계좌를 가지고 각자 운용해서 노후 자산을 쌓은 현재의 DC(IDC)와 달리 각자 계좌는 갖되 풀링해서 합동운용하고 성과를 나눠갖는 연금제도다. 일종의 펀드와 같은 것인데 제도의 수용성 면에서 매우 강력한 현실적 함의가 있다. 무엇보다 CDC는 연금급여가 운용성과와 재정상황에 연동되기 때문에 사용자에게 우호적이다. 특히 연금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서구 기업들은 재정부담이 있는 전통적인 DB형을 유지하는 대신 혼합형으로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CDC는 DB형을 택한 근로자에게도 불리하지 않다. DB형 재정위기는 근로자에게 수급권 불안을 의미하는데 CDC는 수급권 불안을 해소하면서 임금상승률 이상의 연금 운용 성과를 노후소득원으로 나눠 가질 수 있는 대안으로 인식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익숙한 네덜란드의 ABP가 DB형을 CDC로 전환한 대표적인 퇴직연금이다.

CDC는 우리나라에도 낯선 제도가 아니다.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푸른씨앗)이 바로 CDC 형태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금형 퇴직연금이자 최초의 CDC 연금이다. 운용수익률도 계약형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경험과 성과가 확인된 제도인 만큼 기금형 도입이 노후소득보장 강화라는 정책 목적에 충실할 수 있도록 DB형 퇴직연금의 CDC로 전환 가능성이 함께 검토됐으면 한다.

최은영 (eun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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