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오징어 게임, 다시 세계 홀릴 채비... 뉴욕 한복판서 '딱지·구슬 게임 체험관' 오픈
'오징어 게임' 몰입형 체험 공간 열어
'무궁화 꽃이~' 등 5종 직접 체험 가능
"시즌 2 공개 후 한국에도 상륙 예정"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중심 맨해튼. 이튿날 개관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체험관을 미리 살펴보려 나선 길에서 해당 장소를 찾는 데엔 별다른 수고가 필요 없었다. 체험관 1층 외관을 뒤덮은 오징어 게임 이미지, 특히 '영희'의 사진이 시멘트 빛 빌딩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희는 오징어 게임 시즌 1의 첫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등장했던 로봇으로,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참가자 움직임을 감지한 뒤 즉사시키는 무시무시함으로 극의 긴장감을 높인 주역이다.
이날 이 건물 앞을 지나던 상당수가 영희를 알아보고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댔다. "오징어 게임인가 봐"라며 유리 너머 체험관 내부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많았다. 한국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 세계에 타전된 날, 뉴욕 한복판에선 오징어 게임이 K콘텐츠의 위상을 조용히 뽐내고 있었다.
넷플릭스는 11일 뉴욕 최대 번화가인 코리아타운 초입의 맨해튼몰에 오징어 게임 체험관(Squid Game : The Experiences)을 열었다. 오는 12월 오징어 게임 시즌 2 공개를 앞두고 시즌 1 속 게임을 팬들이 직접 체험할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게임 입장 전 대기 공간에는 미국 최대 한인마트인 H마트와 협업해 한국 식음료 판매 매장도 배치, 누구든 둘러볼 수 있도록 했다.
29~59달러(약 3만9,200~6만7,600원)의 입장권을 구입하면 한 시간 동안 시즌1에 등장한 게임에서 영감을 받은 구슬 던지기, 걸음 기억하기 등 3종과 또 다른 2종 등 총 5종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회당 24명씩 함께 입장해 경쟁을 펼치고, 손목에 찬 밴드로 점수가 자동 계산돼 최종 우승자 1인이 결정된다. 넷플릭스는 "하루 최대 1,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데 3주치 티켓이 전부 팔린 상태"라며 "뉴욕에 이어 이달 중 스페인 마드리드, 12월 호주 시드니에 체험관을 열 예정이고 내년에는 서울에도 찾아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심 조심... '진심'으로 게임 즐기는 팬들
개관일인 11일에 다시 찾은 체험관은 이른 오전부터 팬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 흥행작임을 입증하듯 국적도, 성별도, 연령도 다양한 참가자들은 영희 모형과 기념사진을 찍는가 하면, 시즌1에 등장했던 '딱지맨'과 딱지 놀이를 하며 예열 시간을 가졌다.
오클라호마주(州) 애드먼드에 사는 캐시 플루이트는 친구들을 보러 뉴욕에 왔다가 이틀 전 우연히 체험관을 보고선 '맙소사, 반드시 방문해야 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오징어 게임 시즌 1에 완전히 사로잡혔기(obsessed) 때문"이라며 "바로 홈페이지에 접속하니 운 좋게 딱 한 자리가 남아 있어 기꺼이 49달러를 냈다"고 말했다. 독일인 제니 볼튼은 남편, 두 자녀와 뉴욕 여행 중 일부러 시간을 내 체험관을 찾았다고 했다. "온 가족이 오징어 게임 광팬"이라고 소개한 그는 "재미있는 경험과 추억이 될 것 같다"며 한껏 들뜬 표정을 지었다.
실제 한 시간 동안 참가자들과 함께 게임을 체험한 결과, 게임장 분위기는 드라마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하지만 게임 규칙 등은 현실에 맞게 상당 부분 변형돼 있었다. 가령 강화유리가 아닌 것을 밟으면 그대로 떨어져 사망에 이르렀던 시즌 1 속 '징검다리 건너기' 게임은 4초 동안 밟아야 할 칸을 한꺼번에 미리 보여준 뒤 제한 시간 안에 건너게 하는 게임(걸음 기억하기)으로 대체됐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경우 빨간불에 움직이는 사람을 영희가 잡아내는 방식은 같았으나, 곳곳에 방해물을 설치해 몰입감을 높였다. 드라마에서럼 빨간불에 움직인다고 해서 죽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는데도, 참가자들은 기둥 뒤에 숨고 바닥에 엎드리는 등 진심으로 게임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넷플릭스 최초로 세계 각국에 체험공간
넷플릭스가 이처럼 체험형 공간을 직접 개발하고 설치한 건 한국 제작 작품 중에선 오징어 게임이 처음이다. 조시 사이먼 소비자제품 담당 부사장은 기자들과 만나 "넷플릭스 전체로 봐도 '기묘한 이야기' 등 네 작품뿐"이라며 "세계 여러 도시에서 체험 공간을 여는 건 첫 시도"라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에 대한 넷플릭스의 대우와 기대감을 보여 준 투자인 셈이다. 오징어 게임 시즌 1은 2021년 9월, 공개 91일 만에 시청 수 2억6,500만 건을 기록하며 넷플릭스 역대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고,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체험형 공간을 통해 영상에 푹 빠진 팬들에게 몰입형 경험을 제공하고, 이것이 다시 시리즈에 대한 충성도 강화로 이어지도록 하는 게 넷플릭스의 전략이다. 이날 체험을 한 관람객 플루이트는 "실제 경쟁에 참여하는 것은 무척 재미있었다"며 "후속편이 더 기다려진다"고 소감을 전했다.
오징어 게임 시즌 2는 넷플릭스의 연말 최대 성수기라 할 수 있는 올해 12월 26일 공개된다. 한국 연휴(추석)에 맞춰 공개됐던 시즌 1과는 달리, 이번에는 세계 시장을 겨냥한 작품임을 공개일에서부터 드러낸 것이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한국 체험관은 시즌 2 공개 이후인 내년 초 서울의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문을 열 계획"이라며 "한국 소비자들의 경우 아직 공개되지 않은 시즌 2 속의 게임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뉴욕= 이서희 특파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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