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가게 아들, 연쇄 창업으로 ‘아메리칸 드림’
글로벌 화상회의 플랫폼 기업 ‘줌’은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당시 대규모 인수·합병 계획을 밝혔다. 클라우드(가상 서버) 기반의 원격 상담 소프트웨어 기업인 나스닥 상장기업 ‘파이브나인’을 147억달러(약 20조원)에 인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파이브나인의 당시 시가총액은 119억달러(약 16조원)이었다. 이 빅딜은 줌을 창업한 에릭 위안 최고경영자(CEO)가 중국계라는 이유로 미·중 갈등 여파 속에 주주 반대에 막혀 마지막 단계에서 무산됐다. 하지만 세상에 파이브나인이라는 기업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200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파이브나인을 창업한 사람은 한국계 미국인 존 성 킴(50·한국명 김성민) 제트브리지 대표이다. 그는 새로운 창업에 도전하기 위해 2007년 파이브나인 CEO(최고경영자)에서 물러났다. 김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연쇄 창업가로 알려져 있다. 연쇄 창업가는 1개가 아닌 여러 회사를 잇달아 설립한 사람을 말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창업 성공률이 10%도 채 안 되는 것을 감안하면, ‘연쇄 창업’의 성공은 매우 드문 일이다. 사업 수완뿐 아니라 사회·기술 트렌드에 따라 사업 아이템을 선택하는 눈도 필요하다. 김 대표는 “실리콘밸리에 온 한국 출신 인재들을 보면, 한국·한인 스타트업도 이젠 세계에서 승부를 볼 수 있는 때가 왔다”고 했다.
◇샌드위치 가게 아들의 ‘아메리칸 드림’
파이브나인 CEO에서 물러난 김 대표가 도전한 분야는 디지털 헬스케어였다. 젊은 나이에 림프종에 걸린 사촌 동생을 돕기 위해 전 세계 의사들에게 수백 통의 메일을 보냈던 그는 2010년 의사들을 모아 사람들의 궁금증에 답하게끔 하는 모바일 플랫폼 ‘닥터베이스’를 창업했고, 5년 뒤 5000만달러에 매각하며 성공 신화를 이어갔다. 2019년부터는 세 번째 창업한 숙련 개발자 채용 중개 기업 ‘제트브리지’를 이끌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 스타트업과 해외의 한국계 창업가들이 세운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하는 미국 벤처캐피털 ‘래빗벤처스’의 펀드 자금출자자(LP)로 나섰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한 살 때 부모 품에 안겨 미국 땅을 밟았다. 김 대표는 “1970년대 당시 미국에서 한인들은 명백한 하층민이었고, 부모님 역시 LA의 작은 샌드위치 가게를 운영하며 매일 새벽 5시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셨다”며 “힘들게 생계를 이어가는 부모를 보며 반드시 큰돈을 벌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화학을 전공한 뒤 은행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첫 직장에서 은행원으로 6개월을 일했는데,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들어온 젊은 사람들이 수백만 달러를 맡기는 걸 보고 직장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 젊은이들이 모두 스타트업 창업가였기 때문이다.
◇한국 창업가들에게 필요한 건 스토리텔링
김 대표가 출자한 래빗벤처스 펀드는 마이데이터 거래 플랫폼 ‘솔티랩’과 보안 스타트업 ‘테이렌’ 등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려는 초기 한국·한인 스타트업 9곳에 투자 중이다. 선배 창업가이자 투자자인 그는 “한국 창업가들은 똑똑하고 창의적이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스토리텔링)은 많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창업가들의 초점이 자신이 개발한 기술이나 서비스 등 사업 내용에만 맞춰져 있다 보니 정작 투자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김 대표는 제대로 된 스토리텔링을 위해선 자신의 이야기는 20% 수준으로 줄이고 80%를 투자자나 고객이 듣고 싶은 이야기로 채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파이브나인을 창업할 때도 ‘원격 콜센터’ 같은 개념이나 기술은 중요하지 않았다”며 “투자자에게 중요한 건 이 기술이 당시만 해도 작디작은 콜센터 시장을 20억달러 규모까지 키울 수 있다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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