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과 4·3의 고통, 사랑의 힘으로 마주하다
국가 폭력에 의한 개인의 희생은 그것이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사태라는 점에서 명백한 비극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한 사례라 할 5·18은 그간 다양한 서사화의 과정을 거쳤다. 사태의 실상을 알리기 위한 기억 투쟁의 작업으로 그때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극사실적으로 복원되기도 했고, 애도의 윤리가 첨예하게 사유되기도 하였다.
사실에 대한 충실한 기록물로서 5·18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읽히기도 했던 임철우의 소설 ‘봄날′(1~5권, 1997)을 기억한다. 취약한 육체를 지닌 어린 소녀의 강렬한 목소리를 따라가는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1988)가 준 충격도 잊을 수 없다. 2014년 출간된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비롯해 비슷한 시기에 쓰인 권여선의 ‘레가토’(2012), 박솔뫼의 ‘그럼 무얼 부르지’(2014) 등은 그 당시 한국 사회의 정치적 퇴행에 저항한 작업들로 분석되기도 했다.
‘소년이 온다’는 죽은 자의 고통스러운 영혼의 목소리를 들려주거나, 살아남은 자의 육체적 수치를 ‘증언 불가능’이라는 장치를 통해 그려냄으로써 광주의 참상을 좀 더 정확히 재현하고자 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광주를 다루는 기존 작품들에서는 온전한 자리를 부여받지 못했던 인물들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증언할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희생자들의 고통의 개별성에 주목한 것이 ‘소년이 온다’의 성과인 것이다.
제주 4·3을 다루는 ‘작별하지 않는다’는 어떨까. 역사적 비극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남성 개인들의 자책과 자기 연민이 기록되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말 없는 존재로 희생되는 장면들을 그간 우리는 수다한 작품을 통해 확인해왔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려는 용기가 사랑의 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여성들의 연대를 경유해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특별한 작품이다.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시아 최초의 여성 작가라는 사실이 주는 벅참은 분명하다. 물론 이전에도 한강은 대체 불가의 작가였다. 그녀의 작품을 읽으며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감각하는 사랑의 힘을 배워왔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그리는 한강의 언어가 시적이라는 말은 문장이 아름답다는 말 이전에 그녀가 그리는 사건과 그로 인한 고통이 쉽게 이해될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의미할지 모른다.
한강의 시적인 문장들은 철저히 고통스럽게 읽혀야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하고, 잊히지 않아야 할 사람들은 가능하면 오래도록 기억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힘겨움 속에서 배워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배워야 한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이 벅찬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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