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락 무덤’ 된 서산 가로림만
축구장 900여개 면적서 집단 폐사…정화 사업도 급선무
“일평생 바지락을 캐왔는데 이렇게 폐사한 건 처음입니다. 갯벌이 온통 썩은 바지락 천지예요.”
충남 서산시 팔봉면 바지락 양식장의 황기연 팔봉어촌계장(69)이 갯벌 위로 입을 벌리고 속살을 드러낸 채 죽어 있는 바지락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드넓은 갯벌은 죽은 바지락들로 허옇게 뒤덮여 있었는데, 삽으로 갯벌을 살짝 긁어내자 폐사한 바지락들이 또 쏟아져 나왔다.
황 계장은 “죽은 물고기는 물 위로 바로 떠오르지만 바지락은 갯벌에 묻혀 있다 보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떠오른다”며 “우리 어촌계에서만 양식 면적 123㏊에서 바지락이 집단 폐사했고, 이달 초부터 속이 빈 바지락들이 무더기로 떠오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다음달까지가 본격적인 수확철인데 내다 팔 바지락이 없다”며 “신속한 어장 복원을 위해서라도 폐사한 바지락을 빨리 수거해야 하지만 피해 면적이 워낙 방대해 손을 쓸 수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계 5대 갯벌인 서산 가로림만에서 바지락이 집단 폐사해 어민들의 시름이 깊다. 서산시에 따르면 올해 팔봉면과 지곡면, 부석면 등 가로림만에 있는 어촌계 17곳 중 13곳에서 바지락 집단 폐사 신고가 접수됐다. 피해 면적은 약 673㏊다. 축구장 900여개 넓이로, 가로림만 전체 바지락 양식장 면적(861㏊)의 약 78%에 이르는 규모다.
갯벌에 의지해 살아온 주민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다. 장선순 대산읍 오지리 어촌계장은 지난 7일 “적게는 수십명, 많게는 100여명으로 구성된 어촌계 회원들이 4~6월과 9~11월 1년에 두 번 있는 바지락 수확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사실상 하반기에 생산할 모든 바지락이 폐사해 수확량이 평년 대비 절반 수준에 불과한 상황으로 살길이 막막하기만 하다”고 했다.
가로림만에서는 2019년에도 양식장 370여㏊에서 바지락이 집단 폐사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태풍 링링의 영향이 컸다.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많이 와 바닷물 염도가 낮아진 게 집단 폐사의 원인이었다.
올해 집단 폐사 원인은 저염분이 아닌 고수온으로 추정되고 있다. 바지락 양식장의 적정 수온은 최저 15도에서 최고 22도 안팎인데 올해에는 이상 기후로 28도 이상의 고수온이 두 달 가까이 지속됐다.
서산시 관계자는 “여름 내내 이어진 고수온 현상이 바지락 집단 폐사 원인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폐사는 지난달 초부터 시작됐는데, 집단 폐사로 인한 피해 신고는 이달 초부터 대거 접수됐다”고 말했다.
충남도 수산자원연구소 관계자는 “신속하게 폐사 개체를 수거해 조개 바이러스인 퍼킨수스병의 전염을 막는 게 중요하다”며 “폐사한 바지락 껍데기가 쌓이면 어장 노후화와 오염의 원인이 되므로 모래를 투여하는 등 어장 정화사업을 추진해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충남도는 유사 피해 사례 조사 후 지원사업비 재원을 확보해 어장 생산성 유지를 위한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이완섭 서산시장은 “어장 경운과 종패 살포 등을 위한 예산 확보에 나서고 있다”며 “충남도와 협업해 바지락의 집단 폐사 원인을 조사하고 어장 복원을 위한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했다.
글·사진 강정의 기자 justi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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