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언론진흥재단 독립 방안도 논의해보자
윤석열 정부 들어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파성이 두드러졌다. 지난 정부 때 임명된 이사장을 쫓아내려 하고, 재단 기능과 무관한 ‘가짜뉴스 신고센터’를 급조했다. 한 해외 보고서 중 MBC가 신뢰도 1위라는 내용이 들어간 한국 부분만 빼고 번역해 발표하기도 했다. ‘정치 행사’라는 이유로 대통령 비판 행사의 한국프레스센터 이용을 막았다. 이 재단의 ‘운영 지침’을 보면 대관 불허 목록에 “창당, 전당대회, 당원교육 등”의 “정치 행사”가 들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번 건은 ‘정치 행사’의 뜻을 정당의 범위를 넘어 해석한 ‘정치 대관’이었다.
언론진흥재단은 정부가 관리하는 공공기관이다. 이사회는 업무 집행권을 지닌 이사 4인(이사장과 상임이사)과 일종의 사외이사 격인 비상임이사 5명으로 구성된다. 이 중 이사장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바로 임명하며, 상임이사 3명도 사실상 정부가 정한다. 비상임 중 1명은 문체부 장관 추천으로, 나머지 비상임은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협회가 각각 1명씩 추천하게 돼 있지만 이들 모두 문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언론진흥재단의 업무 대상이 일반 공공기관과 달리 ‘언론’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공영방송과 같은 차원의 언론 통제 이슈가 발생한다.
재단의 뿌리인 한국신문회관(1962년 창립), 한국언론인 금고(1974), 한국언론연구원(1981) 모두 군사 정권이 언론을 순치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었다. 언론인 금융 및 해외연수 제공, 언론단체 사무공간 지원 등은 정권이 언론을 관리하는 ‘당근’으로 활용됐다. 민주화 이후 이 기능들을 통합한 한국언론진흥재단은, 공적으로는 필요하나 시장에서 공급되기 어려운 언론인 교육, 품질 기준 제공, 저널리즘 연구 등의 순기능을 강화해왔다.
그러나 권력은 과거의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최근의 단체 지원 선정 목록을 보면, 민주당 정권 때 지원받던 시민단체는 사라지고 친여 성향 단체들이 새로이 등장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재단이 발행하는 잡지 ‘신문과 방송’은 관련 전문인과 대중의 미디어 이해력을 키우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당시 정부 압력으로 저널리즘 논의보다는 기술, 산업 위주로 편집했던 사례와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정권이 바뀌면 그간의 중요 업무가 흐지부지되고 새 정부가 언론에 영향을 미치려는 새로운 일이 부상한다. 비효율적이며 조직 분열을 조장하는 일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가릴 것 없이 당대 정권은 대선 언론 특보단장을 이사장으로 내려보냈다. 이번 정권은 아예 현 정부의 각료(방송통신위원장) 출신을 이사장에 임명했다.
재단 종사자는 절대권력과 가까운 ‘센’ 인물이 이사장으로 오는 게 자잘한 외압을 막는 데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큰 차원의 언론 자유와 독립 가치에 배치된다. 선거 특보단, 정치인, 고위 공무원 출신은 이사진에서 배제하는 게 맞다. 운영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장치들도 필요하다. 정부가 내려보내는 외부 출신 상임이사 수를 줄이고, 직능단체 ‘지명’ 상임 및 비상임 이사를 늘리는 것도 고려해보자. 다만, 비상임은 일반 기업의 사외이사처럼 대주주 격인 정부 측의 집단사고를 막는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처럼 비상임이사 추천권을 지닌 단체장이 자신을 천거하는 것도 적절치 않아 보인다. 이들 단체 대부분은 재단 지원 공모에 거의 매해 나서 선정되고 있다. 지원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서 상임이사들의 의사에 반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 이사진과 감사 모두 언론인과 언론학자 출신인데 이 기관 출신 전문가나 직원대표 등을 포함하는 구성의 다양성도 필요하다. 정부는 ‘지원만 하고 간섭은 못하는’ 효율적이고 독립적인 언론진흥재단 구조를 구상할 때가 됐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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