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농부들은 애간장이 탄다

기자 2024. 10. 13.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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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살고 있는 작은 흙집 지붕이 삭아 이슬비만 내려도 아내가 걱정을 한다. 어찌 지붕만 삭았겠는가. 싱크대 서랍도 삭고, 창고문도 삭고, 고된 농사일에 무릎과 팔꿈치도 삭고, 설익고 서툰 사람 관계로 마음도 삭아 성한 데가 없다. 서너 해 전부터는 오랜 낫질과 호미질로 손가락 마디마디가 비틀어져 밤마다 아리다.

사람만 늙어 가는 게 아니다. 집도 같이 늙어 간다. 스무 해 전에 흙집을 함께 지은 ‘나무로’ 대표 김도환 목수가 아스팔트싱글 지붕을 살펴보더니, 평생 쓸 수 있는 양철(징크) 지붕으로 바꾸자고 한다. 아내와 나는 공사비를 빌려서라도 바꾸기로 했다. 더 삭으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하니까 말이다. 김도환 목수가 20년 전에 흙집을 지을 때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저는 집을 지을 때, 그 집에서 살아갈 사람들을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짓습니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일꾼들도 저와 똑같은 마음으로 집을 짓습니다. 가끔 일꾼들 가운데 언짢은 일이 있거나 몸이 고달픈 사람이 있으면 그날은 편히 쉬게 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집을 짓지 않으면 다치기 쉽고, 더구나 앞으로 그 집에서 살아갈 식구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까요.”

나는 가끔 김도환 목수가 한 말을 되새기며, 농사도 집 짓는 일만큼이나 기쁜 마음으로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키운 농산물을 먹는 사람들이, 자연과 사람을 보살피며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농사지었다. 그런데 갈수록 그게 쉬운 게 아니다. 이상 기후로 말미암아 농사지으며 사는 게 만만찮기 때문이다. 올해는 만나는 농부마다 ‘기후 재난’ ‘기후 재앙’이라고 한다. 산골 다랑논까지 벼멸구가 들어 벼가 허옇게 말라 죽었다. 황금들판은 이제 옛말이 되려나 싶어 걱정이 쌓인다. “배추 한 포기 2만원, 배추 대란, 결국 중국산 수입”과 같은 뉴스를 보면 애간장이 탄다.

오늘 낮에 다 삭은 지붕을 쳐다보면서 애타는 농부 마음을 털어놓았더니, 젊은 목수가 아주 뚜렷하고 야무진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배추 한 포기 2만원 하는 거 당연한 거잖아요. 그 정도 해야 농사지으며 살아갈 수 있지요. 말로 해서는 몰라요. 제 손으로 농사지어 봐야 알지요.” 그 말을 들으면서 막힌 속이 뚫리는 것 같으면서도 왜 가슴이 쓰릴까? 값이 오르면 도시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어찌 살겠는가? 더구나 중국산 김치조차 먹기 어려운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을 텐데 말이다. 무엇보다 중국산을 자꾸 수입하면 농산물 값이 뚝뚝 떨어져 농부들은 빚더미에 주저앉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어쩌다 농산물 값이 오르면 하나같이 물가 주범이 농산물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배 하나에 7000원이라 ‘화들짝’ 놀랐다. 사과 하나에 5000원이라 ‘화들짝’ 놀랐다. 오이 하나에 1000원이라 ‘화들짝’ 놀랐다. 그런데 농산물 값이 내리면, ‘화들짝’ 놀랐다고 하지 않는다. ‘화들짝’은 농산물 값이 오를 때만 쓴다. 내릴 때는 단 한 번도 안 쓴다. 그러니까 어떤 젊은이가 사람을 살리는 농사를 소중하게 여기고, 자라나는 아이들의 ‘오래된 미래’인 농업을 선택하겠는가? 우리 모두 마음을 열고 머리를 맞대고 반드시 풀어야만 할 숙제다.

서정홍 산골 농부

서정홍 산골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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