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이토록 어정쩡한 교육감 선거일지라도
한국의 높은 교육열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식민 지배와 전쟁 후 폐허를 극복하고 고도 성장을 이룬 배경에 교육을 통한 인적 자본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당시 연설을 통해 여러 차례 한국의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교육열이 높다 못해 과해서 사교육비 부담, 학군지 집값 상승, 교육 양극화 등 부작용이 속출하자 최근에는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보고서를 내고 대학이 지역 비례선발제를 늘려야 한다고 권고할 정도가 됐다.
그러나 높은 교육열이 무색하게 시도교육감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은 유독 저조하다. 대통령 선거나 지방선거와 따로 치러지는 교육감 단독 선거의 경우는 투표소를 찾는 발길이 더 뚝 떨어진다. 2008년 서울시교육감 선거의 최종 투표율은 15.4%, 2009년 경기교육감 선거 투표율은 12.3%에 그쳤다. 오는 16일 치러지는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 역시 지난 11~12일 진행된 사전투표율이 8.28%에 머물렀다. 양강 구도를 형성한 진보진영 정근식 후보와 보수진영 조전혁 후보가 막판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그 열기는 선거 캠프 안에만 갇혀 있는 듯하다.
교육감 직선제는 주민 대표성을 높이고, 교육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2007년 도입됐다. 그러나 대부분 진보·보수 진영의 경쟁으로 선거 구도가 좁혀졌고, 유권자들은 예외없이 무관심했다. 현재 교육감 선거는 주민 대표성과 교육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의 어느 목적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직선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육감 선거에 관심이 낮은 데에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초중고 공교육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교육감을 투표로 정해야 할 필요성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낮은 후보가 나오기 때문에 후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교육 정책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학생들이 아직 투표권이 없다보니 실제 교육 현장에 와닿는 공약이 부족한 측면도 크다.
특히 교육감 선거가 정치적 중립을 내세우면서도 결국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경쟁 구도로 굳어지는 것은 교육감 선거에 ‘교육’의 설 자리를 좁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교육감 후보는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 후보자 등록 신청 개시일 1년 전부터 당적을 가지면 안 되고, 교육 유관 경력 3년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정당은 교육감 후보를 공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 출마를 고민했던 한 대학교수는 “서울이나 경기도 정도의 큰 지자체에서 선거를 치르려면 조직력이 있어야 하고, 여야 지지 기반 없이는 힘든 게 현실”이라며 “지금의 교육감 선거 제도는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보이지 않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교육감 후보는 정당의 공천을 받지 않아 번호도 없지만 후보가 입고 나오는 점퍼와 넥타이의 색깔, 그들이 외치는 심판론을 보면 사실상 정당에 표를 던지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여야에서도 교육감 선거 제도 개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지영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시도지사 선거에 교육감 러닝메이트제를 도입하자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시도지사 선거 후보자가 교육감 후보자를 지명해 선거에 공동으로 출마하고, 시도지사 당선자가 지명한 후보를 교육감으로 임명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반면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러닝메이트로 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면서도 “정당 공천을 아예 공개적으로 해서 하자 하는 것은 좀 고민은 된다”고 말했다. 눈 가리고 아웅 하지 말고 차라리 정당이 공천을 하자는 쪽이다.
아직도 왜 이번에 서울교육감을 다시 뽑는지, 후보가 누구인지, 무슨 공약을 들고 나왔는지 모르는 시민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감이 갖는 권한은 막강하고, 또 중요하다. 올해 서울시교육청 예산은 12조4486억원이다. 교육감은 교육공무원·교사 및 학교장 인사, 조례 제출, 학생 선발과 배정 방법 등을 책임진다. 교육감의 의지에 따라 학교에서 이뤄지는 교육의 방향성이 달라질 수 있고, 학부모와 학생이 체감하는 정책 대부분이 교육감 권한 아래 있다. 이토록 어정쩡하고 무관심한 교육감 선거지만 유권자가 여전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이윤주 정책사회부장 run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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