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1층이 있는 삶은 과연 올 것이다
오랜만에 친구와 보기로 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수다를 떨 생각에 신이 났다. 휠체어를 타는 그 친구에게 식당 예약을 위해 뭘 먹고 싶은지 물어보았더니 심드렁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메뉴 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들어갈 수만 있으면 다행이지.”
저주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만나기로 한 동네 건물마다 들어서 있는 수많은 식당과 찻집은 대부분 1층 가게였음에도 간발의 차이로 휠체어가 갈 수 없었다.
고작 한 뼘의 턱 때문에, 한 칸 올라가는 입구 때문에, 흉내만 낸 경사로 때문에 가게 코앞에서 돌아서야 했다. 어느 식당에 겨우 입성한 후에야 그 식당의 메뉴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마주한 밥상은 따뜻했지만, 목구멍을 넘어가는 밥알은 뻣뻣했다. 나도 괜히 설움에 목이 메었기 때문이다.
1층에 평등하게 접근하지 못하는 현실을 다루는 법이 우리나라에 없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도 있고,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도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꼬여도 한참 꼬여 있다.
1997년 제정된 편의증진법은 건축물에 경사로나 점자 표기 같은 장애인 편의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라 하고 있지만, 1998년 4월11일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나 일정 바닥 면적 이하 건물은 설치를 하지 않아도 된다.
계속 바닥 면적 무려 300㎡(약 90평) 이하를 기준으로 설치 의무를 면제하다가 2022년 4월 말에야 50㎡(약 15평)로 줄였다.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라도 증축, 개축, 용도 변경 시에는 편의시설을 설치하도록 했으나, 실상 대부분을 차지하는 실내 공사에는 그 의무가 없다.
법령에 이렇게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 보니 이행강제금으로 설치 의무를 회피하거나 법상 ‘완화’ 신청을 통해 설치를 미루는 경우도 적지 않게 벌어진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영업허가를 내주기 전에 편의시설을 갖추었는지를 봐야 한다는 주장, 임차인이 ‘울며 겨자 먹기’로 설치 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소유자와 관리인의 비용 부담 의무를 법에 담아야 한다는 주장 등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국회는 조용하다.
불완전한 법령 때문에 1층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자, 시민사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올해로 벌써 6년이 넘어가는 ‘1층이 있는 삶’ 운동이 그것이다.
2018년 봄에 공익변호사와 장애인 인권 단체들이 모여 1층 접근이 어려운 편의점, 호텔, 대형 커피숍을 상대로 공익소송을 냈고 2년이 지나 승소했다. 1심 법원은 건물의 턱과 계단을 방치한 법령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유아차를 끄는 보호자, 계단을 오르기 어려운 노인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 무효라고 판단했다.
아직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오는 23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소규모 매장에 부여하지 않은 시행령을 국가가 장기간 개정하지 않은 점이 위법인지에 대해 공개 변론을 연다. 몇년 만에 열리는 전원합의체 공개 변론인 만큼 청구인과 정부, 양측 대리인의 변론, 참고인 진술, 참고인 간의 질의응답, 재판부와 대리인 간 질의응답이 팽팽하게 진행될 예정이다.
공개 변론을 거쳐 판결이 어떻게 선고되더라도 이제 낡은 법령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갈 때가 되었다. 소아마비로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던 김순석이 1984년 서울시장에게 ‘서울의 턱을 없애주시오’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지 40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1층에 접근할 수 없는 많은 사람이 있다.
가고 싶은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고, 눈치 보거나 부탁할 필요 없이 편의점도 가고 마트도 가는 일상은 누구에게나 열려야 한다. 모두에게 평등하게 1층이 있는 삶이 법을 타고 곧 올 것이리라 기대한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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