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화려한 별들 사이에서 당연해진 착취와 도태
지난달, ‘국회에 간 아이돌, K팝의 성공 뒤에 가려진 아동·청소년의 노동과 인권’이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방송국이나 스튜디오가 아닌 국회에서, 전직 아이돌들이 직접 토론자로 나서 발언하는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연습생 시절부터 지속되어 온 생활고, 인권 침해, 교육 부재, 임금 착취 등 그동안 화려한 무대 뒤에 감춰졌던 K팝 산업의 어두운 이면이 공개적으로 다뤄졌다.
연습생 및 신인 아이돌의 권리 침해 문제가 지적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K팝의 세계적 성공 이후, 아이돌 육성 시스템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다. 지난해에는 스페인 언론 ‘엘파이스’가 K팝의 비인간적인 시스템을 언급하며 방탄소년단 멤버 RM에게 질문했을 때, 그의 답변이 화제 및 논란이 되기도 했다. 팬들조차 현 시스템이 아이돌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가혹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명확한 기준, 제도 등이 미비하다 보니 뜬구름 잡는 논쟁으로 끝나버리곤 했다.
K팝 산업에서 아동·청소년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이유에는, K팝의 인기에 도취되어 산업 구조의 체질적 개선을 외면해온 엔터테인먼트 업계, 방송국, 그리고 정부의 책임 방기가 있다. 연습생에 대한 보호 제도는 사실상 전무하며, 데뷔 후 빠르게 수익을 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위압적인 문화까지 더해져 아동·청소년의 착취가 당연시되고 있다. 최근 화제가 된 ‘피프티피프티’ 분쟁 및 민희진·하이브 사태에서도 K팝 산업의 도제식 문화와 현 비즈니스 구조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아이돌 출신들은 지망생 중 성공한 사례가 0.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돈도 벌 수 없고 학업도 포기하며 인격 침해까지 감내해야 하니, 대다수는 큰 상처를 안고 업계를 떠나 위태로운 청년기로 진입하게 된다. 단순히 인권 문제를 넘어서, 연습생 시절의 시간이 다른 경력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점에서 이들은 매우 위험한 진로를 걷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경력 전환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유일무이한 진로를 누가 감내할지는 뻔하다. 실력보다는 그 기회비용을 사회·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계층만이 살아남는다면, K팝 산업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다.
K팝의 성공 뒤에는 수많은 아동·청소년의 희생이 숨어 있다. 그러나 국가와 K팝 업계는 ‘성공하면 대박, 실패하면 본인 책임’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그들의 인생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K팝을 계속 국가 성과로 떠들고 싶다면, 이제라도 (예비)대중문화예술인의 노력과 일을 존중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이번 토론회를 주최한 ‘아동·청소년 미디어인권 네트워크’ 등 시민사회의 노력 덕분에, 아역배우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면서 개선의 가능성을 보였다. 이제는 아이돌 및 연습생이라는 영역에서도 아동·청소년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뎌야 할 때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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