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임신부 11%, ‘임신중지’ 원해도 상담 매뉴얼은 ‘임신 유지 권유’만
‘보호출산제’도 실효성 없어
지난 7월 시행된 ‘보호출산제’로 출산·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위기 임신부들이 정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게 됐지만, 실제 위기 임신부들의 상담 내용을 분석해보니 100명 중 11명이 임신중지 관련 상담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현행 제도에서 임신중지 관련 상담은 받기 어렵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5년이 흘렀지만 정부가 임신중지를 보건의료시스템 안에서 고민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고려하지 않고 익명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하는 보호출산제도의 예고된 ‘미스매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출생 통보제·보호출산제 시행 이후 전국 16개 위기 임신 상담 기관(대전·세종 통합 운영)에서 이뤄진 상담 내용을 분석해보니 7월19일부터 8월 말까지 상담기관을 찾은 사람은 307명이었고, 이 중 35명(11.4%·복수 응답)이 임신중지와 관련한 상담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상담 인원이 두 번째로 많은 서울시로 좁혀보면 보호출산(3명)보다 임신중지(12명) 상담이 더 많을 정도다. 임신중지 관련 내담자 중 가장 많은 나이대는 10대(16명)로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9월 전체 상담 건수, 보호출산 건수는 발표했지만, 상세한 상담 내용과 내담자 지역·나이 등을 분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임신중지를 원한다 하더라도 필요한 상담을 받기 어렵다. 용 의원이 전국 16개 기관의 임신중지 상담 매뉴얼을 확인해보니, 수술 가능한 병원이나 의료 정보 등 구체적인 내용을 제공하기보다는 임신을 유지하도록 상담을 진행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복지부가 인구보건복지협회에 위탁해 운영 중인 성·임신 종합 정보 사이트 ‘러브 플랜’ 역시 실효성이 떨어졌다. 이 사이트에선 ‘낙태죄’가 이미 폐지됐는데도 ‘정신장애, 강간 등의 사유가 있어야 임신중지를 할 수 있다’며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있었다.
이는 예고된 한계다.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7월까지 서울·경기에서 운영한 위기 임신부 지원 시범사업에서도 임신중지 상담이 꾸준히 있었는데도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용 의원은 “원가정 양육이 가능하다면 당연히 좋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임신부도 많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다양한 선택지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화 기자 cl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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