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비팜(BPAM), 그리고 창의를 연결하는 도시
부산은 플랫폼 기능 필수…철저한 평가, 미래 기약을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지난 11일 끝났다. 올해 BIFF를 취재하며 필리핀에서 끝내주는 영화 ‘조용한 경청’(The Hearing)을 들고 온 로렌스 파하르디 감독, 카자흐스탄에서 멋진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생강 쿠키’(Gingerbread of Her Father)를 가져온 알리나 무스타피나 감독, 네팔 영화 ‘경찰관, 푸자’(Pooja, Sir)와 몽골의 ‘트레버스티’(Travesty) 제작진을 만나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 영화 ‘지옥만세’를 만든 임오정 감독, ‘밀수’의 강혜정 제작자, ‘터미네이터’를 해설한 화학자·작가 곽재식 등이 무대에 직접 올라 들려준 이야기도 아주 흥미로웠다. GV(관객과 영화 출연진·제작진의 대화) 없이 작품만 상영한 잠비아의 ‘뿔닭이 되는 것에 대하여’(감독 룬가노 뇨니), 아이슬란드의 ‘빛이 산산히 부서지면’(감독 루나르 루나르손) 또한 부산에 앉아 세계를 만나게 해주었다.
파하르디 감독이 “아마, 나 같은 아시아 감독에게는 세계 최대 영화제”라고 말한 BIFF의 힘이 세계 영화가 부산에 모이도록 장(場)을 펼치는 데 있음을 거듭 느꼈다. 이런 바탕 위에 BIFF는 진짜 영화·콘텐츠 장터인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을 함께 여니 구도가 탄탄하다. BIFF가 해결할 과제가 아직 쌓여 있고 국제 영화제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고들 하지만, 부산에 BIFF가 없다고 상상해 보자. 어떤 방식으로 이만한 효과를 거두겠는가.
제2회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비팜·BPAM: Busan International Performing Arts Market)이 지난 4일 시작해 8일 폐막했다. 부산시가 주최하고 부산문화재단이 주관했다. 비팜(예술감독 이종호)은 부산시의 두 가지 궁리에서 시작했다. 첫째 부산 공연예술계에 지금 없는 것, 모자란 점은 뭘까? 둘째 부산이 한국 공연예술계에서 판을 새롭게 펼칠 방안은 없을까? 그렇게 나온 방향이 공연예술 작품의 유통이었고 이를 구현할 형태가 장터(Market)였다. 비팜은 한마디로 부산을 공연예술 작품 판매·유통이 이뤄지는 플랫폼으로 가꾸겠다는 뜻이다.
기존 ‘공연예술 지원-단발성 공연-이 과정 반복-시장에는 영향 없음-재생산 구조 만들기는 어려움’으로 끝나던 닫히고 끊긴 형태의 지원 방식을 넘어 부산시가 새로운 방향을 고민해 감행한 시도인 점에서 비팜은 관심을 기울일 만하다. 기술이 엄청난 속도로 발달하고 세상은 초(超)연결되면서 선명해진 점이 몇 가지 있다. 알고 봤더니 세계에는 좋은 상품(예술계에서는 작품)이 아주 많더라는 사실이 그 하나다. 전에는 세상이 초연결돼 있지 않고, 구상을 실제로 구현할 기술이 제한돼 있어 이걸 잘 몰랐다.
근데 시장 또는 현장에서 발견-선택되는 과정을 거치지 못하면 그 좋은 성과물은 대체로 묻히고 말더라는 게 그 두 번째다. 이런 상황에서 플랫폼이 강력한 존재로 떠올랐다. 플랫폼 경제라는 말이 생긴 지도 이미 오래됐다. 당신이 예컨대 무한동력장치 같은 걸 발명했다 한들 네이버 장터에서 사람들이 발견해서 선택하지 못한다면 그걸 어떻게 알리고 팔 텐가. 게다가 역사를 살피면 부산 정도 되는 대규모 도시 치고 국내외를 아우르는 교류-거래 중심지, 다시 말해 국제 장터 기능을 갖추지 않고 발전의 임계점을 돌파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지난해 5억 원을 들여 부산문화재단 주관으로 연 비팜은 올해 예산을 13억 원으로 증액했다. 부산문화재단도 첫해보다는 좀 더 짜임새 있게 적극성을 갖고 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힘을 더 기울인 만큼, 성과도 보인다. 부산문화재단이 지난 11일 낸 결산 자료에 따르면, 외국 공연예술단체 델리게이트 143명(36개 나라)을 비롯해 작품 구매와 관련된 공연예술 주요 종사자 314명이 비팜에 왔다.
비팜은 작품을 알리고 유통하기 위해 실제 공연도 펼치는 장인 만큼 시민은 부산문화회관·경성대·문화골목·광안리해변 등지에서 다양한 공연을 즐겼다. 결산자료는 “공연을 관람한 시민과 예술단체 구성원을 포함하면 5만여 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부산문화재단 최윤진 단장은 “유명한 에든버러프린지페스티벌이 다음번 자신들 행사에 비팜이 참여하도록 구체성 있는 제안을 했다. 예술단체와 델리게이트의 직접 만남에 신경 썼는데 473회 미팅이 이뤄졌다”고 성장세를 설명했다.
다만, 공연예술계는 다른 장르보다 실제 ‘구매 완료’되기까지 과정이 까다로운 점은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국내외에서 온 공식 초청작 40편을 비롯해 전체 200여 편 공연을 감당하기에는 조직 규모가 너무 작고, 페스티벌 시월 기간 공연 수요가 폭주하면서 현장이 어려움을 겪는 등 보완할 점 또한 많다. 철저한 평가와 멀리 보는 비전 다듬기가 뒤따라야만 한다.
조봉권 부국장 겸 문화라이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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